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희 Nov 28. 2018

사랑은 ‘다른 삶’을 가능하게 한다

연애에서 맛 본 사랑의 힘


우리 이제 사귈래요?


아내를 처음 만난 건 2009년 6월이었다. 회사 후배가 친구를 소개해줬다. 교회 다니는 성실한 남자면 된다기에 내가 적임자라고 말했다. 아내의 첫인상은 예뻤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왔는데 정말 하얗고 예뻤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 세 번째 데이트를 이어갔다. 그 사이 저녁에 전화 통화를 길게 하기도 했다. 예감이 좋았다. 소개팅은 세 번째 만남에 결론을 짓는다는 나름의 소신(?)이 있었다. 그래서 고백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예뻤고 함께 있으면 좋았으니까. 종로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슴이 벌렁벌렁 거렸다.

“우리 이제 사귈래요?”

거절 당했다. 손부터 잡은 게 실수였을까. 하지만 아내도 아쉬움이 있었던지 그 후에도 몇 번의 더 만남을 더 가졌다. 얼마 후 아내와의 1일이 시작됐다. 아내에게 나와 사귄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못생긴 것이 좀 불만이었지만 맛있는 것을 사주는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사회초년생의 눈에 스테이크 사주는 대리님이 조금 멋져 보였나 보다. 역시 연애는 인간의 본능이 만들어 내는 사건이다.



연애의 기술


기쁨도 잠시, 연애는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다. 무뚝뚝한 대구 남자에게 이성과의 대화와 스킨십은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아내는 종종 불만을 표시하거나 화를 냈다. 다행히 나를 버리지는 않았다. 대신 긴 훈련의 시간이 이어졌다.

아내는 말이 없는 내 성격을 무척 답답해 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나면서도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남자, 싫을만 하다. 하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는 나 역시 답답했다. 도대체 수 많은 커플들은 무슨 말을 하면서 데이트하는 것일까?


난 대화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비록 쓸데없는 잡담이라도 잡담을 나누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호의와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관심도 없는 날씨나 뉴스 이야기를 나누지만, 사실 관심이 있는 건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다. 상대방과 더 가까워지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바로 '잡담 혹은 대화’인 것이다. 대화의 내용은 부차적일 뿐이다. 아내가 때때로 화를 냈던 이유도 이해가 된다. 대화의 부재는 곧, 친밀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잡담이란 대화를 이용하여 그곳의 분위기를 조성해내는 기술이다. 따라서 잡담에 능한 사람이란, 화술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시간을 잘 때우는 사람’이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요컨대 대화라기보다 ‘사람 사귐’에 가깝다.
- <잡담이 능력이다>(사이토 다카시 저/장은주 역/위즈덤하우스)


아내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시작했다. 데이트하러 가는 길에 하루동안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중에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대화 소재를 고르고 정리했다. 처음엔 이야깃거리가 될만하다 싶은 걸 골랐는데, 나중엔 시시콜콜한 것까지 말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아내와의 대화가 조금 더 쉬워졌다.


아, 이런 것까지 얘기할 수 있는 거구나!’


시작은 시덥잖아도 어느새 이야기는 삶의 깊은 부분까지 도착해 있다. 때로는 대화의 내용보다 대화의 행위 자체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특히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 시작 단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많은 대화가 친밀함을 쌓는다.



스킨십은 몸으로 나누는 대화


스킨십도 마찬가지다. 스킨십은 몸으로 나누는 대화다.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메시지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몸의 대화이다. 하지만 난 어릴 때부터 스킨십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했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아내와도 일상의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나누지 못했다. 하루는 아내가 스킨십에 대한 서운함 마음을 꺼냈다. 놀라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어서 놀랐고 여자로서 말하기 쉬운 내용이 아니었기에 고마웠다. 우리 관계를 위해 용기를 낸 것이다.

결혼을 준비하며 아내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라는 책을 함께 읽은 적이 있다. 상담전문가 게리 체프먼은 이 책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소개한다. 그리고 사람의 성향에 따라 더 중요한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했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1. 인정하는 말
2. 함께하는 시간
3. 선물
4. 봉사
5. 스킨십

책에 있는 검사지를 통해 자신이 가진 사랑의 언어를 확인해봤다. 나는 인정하는 말과 봉사, 아내는 함께하는 시간과 스킨십이 나왔다. 서로의 언어가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스킨십에 서툴렀으니 아내가 못마땅한 건 당연했다.


그 후로 나도 의식적으로 스킨십에 신경 썼다. 아내를 사랑했기에 아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스킨십도 대화처럼 의식하고 노력할수록 조금씩 익숙하고 쉬워졌다. 스킨십을 통해 서로의 친밀함을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마음이 힘들고 걱정이나 불안감이 있을 때, 가벼운 스킨십은 훌륭한 치료제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 몸으로 전해지는 온기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었다. 때로는 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이 더 깊은 대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00년대 초 ‘프리 허그 캠페인’이 유행했던 것도 상대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담은 스킨십이 주는 위로와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허그닷컴(free-hugs.com)의 설립자인 제이슨 헌터(Jason G. Hunter)는 평소 "그들이 중요한 사람이란 걸 모든 사람이 알게 하자." 는 가르침을 주던 어머니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2001년에 최초로 시작했다고 한다.(출처: 위키피디아)


아내에 대한 내 마음도 같았다. 더 많이 대화하고 더 스킨십을 나누려고 노력했던 이유는 아내가 내게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매운 맛을 보다


연애를 하면서 또 어려웠던 것은 매운 음식을 먹는 일이었다. 아내는 매운 것을 참 좋아했다. 특히 떡볶이를 좋아했는데 내가 어릴 적 먹었던 맛이 아니었다. 요즘은 일단 매워야 인기가 있나보다. 내 입에는 그렇게 매운데 아내는 그저 맛있다고만 했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 중에 매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항상 심심한 음식만 먹어서인지 적응이 어려웠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 즉, 고통이라고 설명도 하고 매운 것을 자주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설득도 했다. 소용이 없었다. 한번은 대구의 유명한 ‘신천할매떡볶이’ 가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택배로 주문을 해 직접 만들어 먹었다. 죽는 줄 알았다. 고추가루로 만든 소스에 혓바닥이 얼얼했다. 땀도 많은 체질이라 땀을 줄줄 흘리며 도저히 못 먹겠다고 수저를 놓았다.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조금 맵네. 자기한테는 많이 맵겠다”

아내를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다. 그동안 내 입맛도 변했다. 아주 매운 건 아직 힘들지만 조금 매운 음식들은 즐기며 먹고 있다. 심지어 매운 음식이 생각날 때도 있다. 주말 저녁 아내와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매운 곱창을 먹는 일은 일상의 행복 중 하나다. 매운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랑이 사람을 이렇게 바꾼다.



사랑의 힘


아내는 나와의 결혼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데이트 할 때 항상 집으로 데리러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너무 사소한 일이라 느껴져 놀랐다. 연애 당시 아내의 집은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이었고 우리 집은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면 1시간 30분 정도 소요 되었다. 주말 강남에서 10시에 데이트 약속을 잡으면 난 9시까지 연남동 집 앞에 가서 아내를 기다렸다. 몸은 피곤했지만 빨리 보고 싶었다. 매번 그러다보니 약속 장소나 시간이 별로 의미가 없었다. 나중에는 데이트 약속을 잡지 않고 늘 아내 집 앞에서 만났다. 3년 동안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아내를 위해 오고 간 것이 나에 대한 믿음을 준 것 같다.


아내와 함께 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아내는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지 다 알고 있다. 먼 길을 오고가는 일이 힘들고 때로는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을 아내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데리러 가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 아내에게 중요하지 않았을까.


사랑은 ‘다른 삶’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의 본성과 습관을 거슬러 다른 선택을 하게 한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타고난 성향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나의 행동을 바꿀 수는 있다. 말수가 적은 성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잡담을 조금 더 많이 할 수는 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은 바꿀 수 없지만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늘릴 수는 있다. 우리는 마음만 있다면 비록 느리고 더딜지라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송구영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