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희 Sep 02. 2020

안전한 공동체의 조건

<공감의 시대> 프란스 드 발

‘각자도생(各自圖生)’, 지난해 직장인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라고 한다. 아무도 우릴 지켜주질 않으니, 스스로 자신의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이 단어가 자주 회자되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따랐던 아이들은 지금 이 곳에 없다. 어른들은 각자도생, 제 살 길만 찾아갈 뿐이었다. 지금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도 우릴 지켜주지 않기에, 동학 개미 운동(주식)으로 영끌 청약(부동산)으로 나만의 든든한 안전망을 만들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 간의 무한 경쟁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각자 능력에 따라 사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이러한 경쟁에 따른 생존 싸움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는다. 특히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다윈 진화론을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고 표현하며 사회적 경쟁에 적용했고, 부자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이러한 아이디어는 편견이라고 한다. 그는 <공감의 시대>를 통해 인간이 가진 사회적 감각 즉, ‘공감’의 능력을 강조한다. 분명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1억 년 이상 진화를 거쳐 사회성을 발달시켜 온 존재이다.  저자는 인간의 이 두 가지 특성을 균형 있게 바라보아야,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한다.



공감의 탄생


영장류학자답게 저자는 공감이라는 사회적 감각이 어떻게 발생하고 진화하였는지 추적한다.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공감’의 감각은 유인원, 침팬지, 돌고래, 코끼리 등 영장류 및 포유류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실험 결과를 소개하며, 동물에게도 감정이 존재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며, 공유된 감정을 바탕으로 협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공감과 사회성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공감의 기원을 포유류의 특징으로부터 찾는다. 어미와 자식 간의 유대 관계는 포유류의 생존에 있어 절대적이다. 새끼를 낳고 먹이며 돌보는 어미의 역할이 없으면 그 종족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애와 같이 사회적 유대가 특별히 깊어지는 관계에서 아기 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가장 유대가 깊은 어미-자식 간의 관계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공감’의 능력은 의식적인 사고 작용이 아니라, 우리 몸에 새겨져 있는 자동적인 프로세스이다.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인지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못한다면, 가까운 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 그러나 공감의 대상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치화’의 수준에 따라 공감의 문이 열리기도, 닫히기도 한다.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관계에서는 그 문이 쉽게 열리지만,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잘 열리지 않는다. 결혼한 내 아들이 설거지하면 싫지만, 내 사위가 설거지하면 이뻐 보이는 이유기도 하다. 




사회 진보의 원동력


공감은 인류가 공공의 이익을 향상하는데 기여해왔다. 인간을 포함한 사회적 동물들은 ‘불평등 혐오’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상호주의와 호혜주의에 기반한 공정성을 추구한다. 때문에 인간은 권력과 부의 심각한 편중에 대해, 그리고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불편해한다. 이 공정함에 대한 감각이 민주주의를 가져왔고, 균형과 견제를 바탕한 권력 체계를 마련했으며, 사회적 안정망을 구축하는데 기여했다.

  

인간에게 공감의 능력과 공정함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면 노예제도 폐지와 같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정책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유럽 백인 남성에게 한정되었던 공감의 범위가 조금씩 확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차이를 차별로 대하지 않는 태도는 깊은 공감의 감각에서부터 비롯한다. 


공감의 범위에는 문화적, 사회경제적인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이슈 중 하나인 난민 문제만 보더라도, 공감의 감각을 확장시키는 것이 어려운 과제임을 알 수 있다. 난민의 인권에 공감하기보다, 자국민의 일자리나 경제적 이익에 더 공감하는 것이 현실이다.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난민은 ‘또 하나의 경쟁상대’로 비칠 뿐이다.




코로나19와 기후 위기가 알려준 것


코로나19가 준 교훈 중 하나는 ‘공동체의 안전이 나의 안전을 지킨다’는 것이다. 감염병의 확산을 막고 나와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생각하는 공감의 능력이 필수적이다. 한국 사회는 몇몇 공감 능력이 없는 이들 때문에 코로나 재확산의 위기를 겪고 있다.

 

기후 위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구의 환경을 지키려는 공동의 노력이 나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우리나라는 역대 최장기간 장마를 경험하면서 기후 문제를 새삼 심각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공감의 범위가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사실 코로나가 발생한 원인도 환경에 대한 무분별한 훼손 때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경제적인 분야는 어떨까. 부의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일자리가 불안해지면 공동체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에겐 공평함과 공정함에 대한 감각이 있기 때문에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적정한 부의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회적 불만이 크게 증폭될 것이다. 나는 기본소득 논의가 나오는 것도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기본소득은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하나의 방편이다.




공동체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


<공감의 시대>가 말하는 바는, 인간은 그렇게 투쟁적이며 경쟁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감하고 협력하며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태도가 인간이 오랜 기간 축적해 온 본성이라는 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오늘날의 경쟁적인 각자도생 환경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공감의 능력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반드시 공동체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으리라 예상한다.

  

한국 사회가, 그리고 인류 전체가 보다 안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감의 가치가 회복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의 후손들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나와 내 가족을 넘어서, 다른 국가, 다른 인종, 나아가 동물과 환경에까지 공감의 범위를 확장시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가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를 경험한 것은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나의 이익만 쫓아가는 삶이 결국 나를 포함한 우리, 인류 모두의 삶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공감’이야말로 인류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 공유해야 하는 핵심 가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잘 살지만, 가장 기분이 나쁜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