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바람이 지나간 들판에서
억새들이 서로의 어깨를 스치고 있었다
사랑이 사랑에게 물었다
― 너는 왜 그리 오래
한 사람의 마음에 머무느냐
사랑이 잠시
바람을 듣다가 말했다
―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문간에 기대 서 있을 뿐이다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 내가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다시 물었다
―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란
바람 드는 집 같아서
금세 식고
또 금세 변하지 않느냐
사랑이 웃으며 말했다
― 그래서 나는
따뜻한 곳보다
조금 쓸쓸한 마음을 먼저 찾는다
거기에는 늘
등불 하나 켜 둘 자리가
있으니까
사랑이 고개를 기울였다
― 그러다 떠나야 할 때도
있지 않느냐
사랑이 대답했다
― 떠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사람이 먼저
마음을 접어들고
나를 밖에 두는 것이다
잠시 바람이 지나갔다
들판의 억새가
서로의 어깨를 스치며
흔들렸다
사랑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 그래도 너는
다시 그 사람에게
가겠느냐
사랑이 조용히 말했다
―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늘 거기 있었다
사람이 다시
마음을 열 때까지
문밖에서
마당의 신발처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밤이 깊어지면
그 신발 속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누군가의 발자국이
물 위에서
가만히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