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말하지 않으나
아침 안개가 먼저
사람의 걸음을 적신다
강은 머무르지 않으나
돌 하나 오래 닳아
자기 이름을 잊는다
사람은 오래 묻고도
대답보다
불 꺼진 밤을 더 많이 지난다
봄꽃은 피어
자신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하고
가을 잎은 져서야
햇빛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얻으려던 손을 거두면
바람이 먼저 와 앉고
빈 마음에는
생각보다 여열이 돈다
천하를 말하던 입도
불 꺼진 방에 돌아오면
한 사람의 안부 앞에서 머뭇거린다
옳다 말하던 입이 먼저 다치고
남겨진 말들은
늦게까지 식지 않는다
큰 뜻을 말하던 마음도
어느새 조용해져
오늘의 숨이
가만히 머문다
세상은 내 것이 아닌 듯
잠시 들고 있는 그릇처럼
흐름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저녁
내 쪽으로
조금 돌아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