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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섬 Dec 19. 2023

한순간을 위해


클래식 공연을 듣고 있으니 얼마전 아주 인상깊게 남았던 손민수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https://youtu.be/6xNtJGKdxms?si=Yg8bKBGbSXUqa0dZ


저 위치까지 올라갔음에도 손민수는 스승인 고 러셀 셔먼에게 호통을 듣는다.

책임감 때문에 연습을 할 때가 많은 것 같다는 말에 러셀 셔먼은 이렇게 말한다.


"음악적 영감이란 게 가만히 있는 너에게 찾아와서 
짠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계속 어려운 길을 찾아나가야하고,
한순간 영감이란게 너에게 올 수 있다면 
그건 너무나도 큰 선물일 것이다


자신이 연습하는 과정을 홀로 암벽등반을 하는 마크 앙드레 르클렉에 비유하는것도 인상깊었다. 그만큼 고독하면서도 힘든 과정이라는 뜻이겠지. 나와 음악이 하나되는 짧은 순간, 한순간의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긴 시간 자신의 피아노와 마주앉아 고독한 싸움을 해나간다. 그 모습이 마치 구도자 같다는 느낌이었다. 


또한 '건반 위의 철학자'라고 불릴만큼 내가 왜 이 음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탐구해가는 모습도 깊게 남았다. 한 음 한 음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흐름을 생각하며, 내가 왜 이 음을 내고 있나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듣는 내내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단단하고 우람하고 거대하지만 부드러운 나무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나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던 꽉찬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Noph4Uj5SO4


작년 겨울, 손민수의 리스트 솔로 리사이틀 연주를 들으러 갔었다.  실은 잘 알지 못했고, 임윤찬의 스승인데다 리스트를 연주한다고 했던 이유가 컸다. 관객은 가득 차있었고, 설레임이 섞인 웅성거림이 잦아들면서 손민수는 연주를 시작했다. 그 큰 무대 가운데 피아노만 하나 놓여있었고, 동그란 스포트라이트만이 그 피아노를 밝히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오직 혼자였다. 


연주가 시작하자 그는 그 큰 공간을 소리로 가득 채워넣기 시작했다. 음의 파도가 넘실거리면서 다가왔더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연주는 무한히 이어지는 것처럼 다른 공간 속에 데려다놓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 박수소리가 공연장으로 데려다놓으면서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건 연주하는 동안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었다. 곡이 끝나면 그는 우아하게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오래 준비해온 것을 마음껏 펼쳐놓은 사람의 조금은 후련한 표정도 있었다. 


가끔씩 그 땀방울을 떠올린다. 나는 그 뒤로 손민수의 연주를 종종 찾아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무대는 명동성당에서 울려퍼지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영상이다.


https://youtu.be/BLElZaqQxE4?si=CL0oiciYi_8kJM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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