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 테레사

온몸으로 자신을 말하는 아이

by 아가다의 작은섬




마음이 힘들어서 선뜻..

정말 모르면 무식하다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로맨스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그렇게 사랑 속에서 아이들이 예쁘게 자랄 줄 알았다.


하지만 로맨스는 로맨스일 뿐, 육아는 현실이었다. 나는 정말 육아가 힘들었다. 제 마음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엄마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과제였다.


그렇게 선뜻 둘째를 가질 엄두를 못 내고 미루던 아이, 막상 가지려고 하니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마음을 내려놓고 되었다. 싶은 마음을 가지던 찰나 그렇게 둘째, 테레사는 나에게로 왔다.


예상했던 입덧이지만

첫째 아네스 때는 힘든 입덧을 오로지 혼자 견디었지만 입덧 기간 중에 아네스를 보살피지 못할 것 같아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친정으로 내려갔다.


예상했던 입덧이지만 고약했다. 토하고 토하고 더 이상 토할 것이 없어 노란 국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헛구역질을 해댔다.


‘아이고, 아네스 때도 이랬나? 안 되겠다. 어서 일나 봐라. 병원 가자.’


‘엄마, 내가 안다. 가봤자 별수 없다. 포도당 수액 맞고 끝이다. 그거 맞고 나면 더 힘들다. 됐다. 안갈끼다’


첫째 때의 경험으로 입덧에는 시간이 약이다. 버티는 것 외에는 별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오로지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위산으로 식도가 상해 피를 토하는 나를 보며 덜컥 겁이 난 엄마 손에 이끌려 산부인과에 갔다.


빵 터진, 테레사의 오두방정 춤

포도당 수액을 맞고 초음파 진료를 하였다. 정말 손톱 만한 세포 덩어리인 테레사가 온몸을 파닥파닥 거리는 모습을 보고 ‘저건 모지? 저렇게 파닥거리는데 속이 안 뒤집어지는 게 이상하겠다.’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엄마. 봤나? 파닥거리는 거?’
‘어떤 놈이 나올런가, 뭐 그런기 다있노?’


우리 모녀는 순간 빵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탯줄로 이어진 불안 하나,

어느 정도 입덧이 안정을 찾아갈 때쯤 요셉에게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집을 판다고 연락이 왔어. 이사 가야 할 것 같아.’


엄마의 걱정을 뒤로하고 그렇게 서울로 상경했다.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참으며 집을 구하로 다녔다. 지금 있는 전세금에서 4천만 원이나 더 있어야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성에 차지 않는 집들, 발품을 팔고 팔아 겨우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할 수 있었다. 마음 조리고 조리던 시간, 집 없는 설움, 돈 없는 설움에 밤마다 눈물이 나던 시간이었다.


탯줄로 이어진 불안 두울,

농사짓기가 힘들다며 땅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시던 아빠가 과수원 산을 파시겠다는 연락이 왔다. 엄마는 산만은 끝까지 지키고 싶다 하시며 아빠를 설득해달라고 전화를 해오셨다.


아무리 설득해도 아빠의 결심은 확고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사기꾼에게 낚인 것 같은 아빠, 아무리 설명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기꾼 중에 한 분이 엄마와 같은 성당을 다니며 오다가다 엄마 얼굴을 보셨나 보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엄마가 안타까워 보이셨을까? ‘이 거래 사기이니 어서 바깥양반에게 말해서 계약 파기하라’는 말을 건넸고, 결국, 계약서 사인을 앞두고 아빠도 불안하셨는지 계약을 파기하면서 사기당하시는 것을 면하셨다.


이사를 앞두고 친정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그 시간을 오롯이 견디며 하느님에게 매달리고 기도하며 울부짖었던 시간,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음에 좌절하던 시간이었다.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

예정일이 다가와도 엄마 배속이 더 좋았을까? 테레사는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결국, 예정일 하루 전날 입원하여 세상으로 나오라 ‘강요’하기로 했다.


그렇게 유도분만을 위해 촉진제를 맞고 몇 시간이 흘렸을까? 세상에 세상에 그렇게 아플 수가 없더라. 아테스 때 진통은 진통도 아니었구나.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더니 정말 노란 하늘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4시간 반을 진통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 우렁차게 울던 녀석, 잠깐 헤어지고 4시간이 흐른 뒤 너를 처음 마주한 순간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점점 사람이 되어가네?!

말끔한 모습으로 나온 아네스 때문인지 나는 테레사 또한 그럴 것이라 착각했다. 어쩜 저리고 못났단 말인가? 당최 누구를 닮은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못나도 참 못났다.


‘자기야. 큰일 났어. 어떻게 저렇게 못생겼지?’


잠시 집에 다녀간 요셉에게 놀란 마음, 심각하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친정 오빠를 닮았나? 탱탱 불어 터진 얼굴에서 친정 오빠의 모습도 보였던 것 같다. 그렇게 조리원에 들어가고 하루 이틀 지나니 얼굴 부기가 빠지고 점점 사람이 되어가더라.


‘어. 좀 예뻐지네?!’

좀 능숙한 엄마와 표현할 줄 아는 아이

좀처럼 가지 않는 황달, 그리고 새로 이사한 집이 외풍이 심해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감기에 걸려 바깥세상 구경을 일찍 시작한 테레사.


그래도 기저귀 갈기, 모유 수유하기, 아이 재우기, 그런 것쯤은 이제 껌이지. 좀 능숙한 엄마가 편안함을 줬을까? 아네스 보다 보채는 것도 덜하고 잠도 잘 잤다.


조금만 불편해도 앙칼진 울음소리로 제가 불편하니 어서 해결해달라 ‘악’을 쓰며 울던 테레사.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기기 위해 흔들흔들 중심 잡던 모습,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언니를 바라보던 모습,

갖고 놀라고 꺼내 준 노란 냄비 속에 엉덩이를 넣고 성공했다며 뿌듯해하던 모습,


TV에서 나오는 동물만 봐도

언니 어린이집을 배웅하러 나오던 찰나, 옆집에서 키우던 검정 닥스훈트가 테레사의 유모차를 향해 돌진했다.


높은 유모차, 짧은 다리의 개라 다행히 테레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았을까? 그 뒤로 TV에서 나오는 동물만 봐도 숨이 넘어갈 듯 울음을 터트렸다.


언니가 입는 예쁜 팬티, 나도 입고 말테야!

언니가 입는 팬티가 입고 싶었을까? 기저귀를 차지 않겠다며 도망 다니던 널 어쩌면 좋을까?


아직 신체가 발달하지 않아서 안된다. ‘제발 기저귀 좀 차라’ 말하는 엄마 말은 귓등으로 듣고 오로지 언니가 입는 팬티를 입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기저귀를 뗀 녀석, 기특하다고 말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는 제발 좀 기다려라 말하고 나는 내 갈 길 가겠다 외치며 꿋꿋이 자신의 뜻대로 길을 가는 테레사.


‘아~ 하느님 제가 아네스 낳고도 철이 덜 들어서 더 철 좀 들으라고 저에게 둘째 테레사를 주셨군요.’



거의 두 돌이 지나도록..

요셉과 나는 숱 많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지만, 테레사는 누구의 유전을 물려받았는지 두 돌이 지날 때까지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다.


언젠가는 나겠지. 우리 부부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버님이 심각하게 물어보셨다.

아가, 테레사 머리카락은 언젠가 나긴 나는 거냐?

엄마 친구는 내 친구

왜 그랬는지 알 길이 없지만,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가지 않은 나, 테레사도 어린이집에 가길 원하지 않아 4살까지 엄마와 함께 있었다.


엄마가 친구를 만나러 가면 같이 갔는데 이모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어찌나 이모들 화장품에 관심이 많은지 이모가 바른 립스틱이 예뻐 보이면 찰싹 달라붙어 온갖 애교를 부리며 원하는 립스틱을 기어이 바르고 새초롬하게 꽃받침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자신이 싫어하는 건 절대 할 수 없는 테레사.

내가 원하지 않는 신발은 신을 수도 없고,

싫어하는 옷도 입을 수 없고,

머리카락을 아프게 하는 행위도 할 수 없고,

엄마가 괜찮아도 내가 싫으면 싫은 거고,

내가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다.


테레사가 조용하면..

언제부터인가 네가 조용하면 엄마는 불안하다. 궁금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하는 테레사. 엄마가 못하게 해도 궁금하면 어느 방이건 화장실 구석에서든 한번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네가 그럴수록 엄마의 혈압은 상승하고 뒷목을 잡는 날은 늘어만 간다.


나보다 더 나를 알고 싶어 하는 테레사

엄마, 엄마는 무슨 색이 좋아?

엄마, 엄마도 어릴 때 공부했어?

엄마는 어렸을 때 재미있는 게 뭐였어?

엄마는... 엄마는...

아가다의 속마음(ㅋㅋㅋㅋㅋ)


생각하지 못한 사소한 것부터 깊이 있는 것까지 끊임없이 테레사의 순수한 질문은 언제나 나를 일깨운다.


엄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에요?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세요.


테레사는 온몸으로 가르쳐준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방법을. 그리고 말한다. 엄마가 불편하면 불편한 거예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요.



2022.4월 서랍 속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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