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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May 11. 2023

그 마당에서는 누가 짐승이었을까?

나를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떠나보내는 (2023.5.11. 목)





어릴  나는

한시도 엄마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엄마가 화장실을 가면 거기까지 따라 들어가서 엄마 앞에 딱 붙어 서있었다. 멀리 사는 딸 집에 방문한 외할아버지가 본인딸 고생스럽다 싶어 나를 둘러업고 저 먼당까지 나가면 나는 다시 엄마품에 안길 때까지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던 나는 엄마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어느 날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병원에 갔다. 주사든 약이든 아니면 병원자체인지 모르겠지만 극도의 공포심을 느꼈던 나는 병원입구에서 도망쳐 아무 연고도 없는 남의 집 안방에 들어가 숨었다. 뒤늦게 내가 사라졌음을 인지한 엄마에게 붙잡혀 병원에 갔는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병원에 가기 않기 위해 <악다구니 쓰며> 울고 있는 어린 나만 선명하게 기억난다.(난 초등학생 때까지 약, 주사, 병원에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어릴  

나는 세상  모든 것이 두렵고 무서웠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세상을 내 뜻대로 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사랑받고 싶었을까. 엄마에게 나는 쉽지 않은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엄마에게 많이 맞았다. 항상 나는 서럽게 울었고 엄마는 분에 넘쳐서 나를 마구마구 때렸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엄마에게 달라붙어있었고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유치원도 가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내가 맞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숯불바비큐처럼 엄마와 오빠에게 잡혀 연한 갈색 먼지가 나부끼는 마당에서 무자비하게 맞았다. 엄마의 손과 발은 인정사정을 두지 않고 나를 때렸다. 그때 아빠는 친구분들과 마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나는 맞으면서 아빠를 바라봤다. 순간 아빠의 얼굴에 비틀린 웃음이 걸리더니 아빠는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나 내게로 왔다. 그리고 엄마보다 더 나를 무자비하게 발로 짓밟았다. 나를 짓밟으면서 엄마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빠는 분노의 꽉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죽어라. 죽어라.’


그 마당에서는 누가 짐승이었을까?

넓은 색 마당, 포악스럽게 움직이는 손과 발, 그 밑에 깔린 작은 아이, 그리고 안개 같은 연한 색 먼지... 나는 먼지가 되고 싶었던 걸까?


도망쳤다.

조금 크고 나서는 마냥 맞고만 있지 않았다. 도망쳤다. <생문> 초등학교 때까지 살던 집은 스레트지붕에 마루가 있는 집. 방에는 뒷문이 있었다. 나는 항상 그 문을 통해 도망쳤고 산속에 숨어서 노을이 질 때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올 때쯤 집으로 돌아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빨간 벽돌집에 살게 되었을 땐 뛰어들어가 방문을 잠그는 것으로 몸에 가해지고통은 피할 수 있었다.


짓밟힘 뒤

나의 마음을 채운건 분노와 죄책감. 병원 한번 데려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중학생까지 혼자 자는 것도 무서워 엄마아빠 사이에 잤다. 원하는 걸 가질 때까지 떼를 썼고. 조금이라도 고통스러운 건 참지 못하고 징징거리는 바람에 엄마는 내 머리손질을 포기(?)하고 여섯 살 때쯤 단발로 잘라버렸다. 그 뒤 학창 시절 내내 <자의로. 타의로.> 한 번도 장발이었던 적이 없다. 기억 속에 나는 울고 떼쓰는 아이다. 부모가 되었지만 부모로서 쉽지 않은 아이. 그래서 <맞을만했으니까. 맞았지>라는 죄책감이 지금도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다.


또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분하고 서럽고 슬프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래서 복수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쉬도 때도 없이 공격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맞지 않을까.. 난 엄마에게서 더 이상 맞지 않으려고 더 맞선다. 분노로 똘똘 뭉쳐.




내 인생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는 내가 당신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후회를 남긴다. <만약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후회 속에는 죄책감과 원망과 분노가 뒤섞여 있다. 후회하고 후회하는 것을 반복하느라 내 어린 시절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걸까. 그도 아니면 가족이기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관계의 현실 때문일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이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미친 듯이 질문하고 회피하고 자책하고.. 결국 몸에 탈이 나고 말았다.


아직도 나는
당신에게 맞은 몸과 마음이 아파서 가끔 몸에 탈이나. 이제 몸은 맞지 않지만 당신이 지금도 때리는 마음이 아파서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


내 삶에 

엮인 일들이라 이 고통은 오로지 나의 몫이라는 답답함. 이 답답함은 체념과 분노를 불러와.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떠나보내야 까.


엄마
나 진짜 숨 좀 쉬고 살고 싶다. 이 체념 때문에 자꾸 내 감정이 무뎌져. 난 그게 두려워




가족이 

아픈 사람들이 제일 고통스러운 건. 내가 제일 약해져 있을 때 늘어진 테이프같이 재생되는 과거의 망령 때문이다. 꼭 내가 약 해져있을 때 소리소문 없이 들어와 내 속에 꽈리를 틀고 앉아 한동한 나를 괴롭힌다. 그보다 더 숨 막히게 하는 것은 윤회하는 삶 속에 갇힌 것 같은 막막함과 답답함. 가족으로 엮인 이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현실가족은 또 다른 방법으로 나에게 고통을 선물한다.


나는

이 선물을 어떻게 받아야 할까. 감사로. 용서로. 분노로. 웃음으로. 떠나보냄으로. 내 분노를 받아내기엔 그들은 너무 늙어버렸고 나 또한 나이 들어버렸다. 나는 언제쯤 이런 관계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나서 온 존재를 다해 처음 사랑한 사람 때문에 아픈 사람아. 잠깐 옷 긴 만 스친 인연을 떠나보내는 일도 쉽지 않은데 온 존재를 바쳐 사랑한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떠나보내는 일이 어찌 그리 쉬울까.


가족으로 아픈 나에게

아무렇지 않고 괜찮아지기 위해 걸어가는 길은 마냥 꽃길스럽지 않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한마디처럼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진통과 진통사이 짧은 쉼이 있듯 이 노력 끝에 순간순간 괜찮은 날이 있더라. 그러니 나를 살리는 그 길을 포기하지 말고 걸어가자. 이해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길. 그 누구보다 나를.. 이 고통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가라 가라. 떠나가라.
분노도 죄책감도 이 글과 함께 떠나가라.



마음이 

아파 결국 몸에 탈이 나고 말았다. 주사한대로 몸은 치료했지만 마음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만난 숲동굴.. 자전거를 세우고 가만히 서서 내 마음에 숨구멍을 만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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