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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May 04. 2022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날


     




사진출처:펙셀스


결국.. 무엇 하나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습니다.


매주 목요일이면 우리 아파트에 장이 섭니다. 항상 나는 퇴근길에 채소며, 과일이며, 각 종 먹거리를 두 손 가득 들고 집으로 옵니다.


그새 친분을 쌓은 몇몇 사장님들은 낑낑대며 걸어가는 나를 보며  ‘아이고 엄마! 팔 아파~ 수레 들고 나와~’하며 걱정스러운 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그날은 유독 윤기가 짜르륵 흐르는 족발에 눈길이 갑니다. 하지만 냉장고 속에 미리 사놓은 식재료들을 생각하며 발길을 돌려 집으로 왔습니다.


저녁식사 준비를 끝내고도 족발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미련을 떨치지 못한 나는 결국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네스에게 심부름을 보냅니다. 식탁에 차려진 반찬들을 보며 나름‘제일 작은 것으로 사와~’하고 말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녁 식사, 남은 잔반들이 한가득입니다. 족발도.. 애써 준비한 반찬들도.. 어느 하나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외식을 할 때도 저는 욕심껏 주문을 합니다. 그러고 나면 과식을 하거나 아니면 음식을 남기게 됩니다. 결국 과식은 소화불량으로 남긴 음식은 자책과 미련으로 돌아옵니다.





몇해전 아가다네 베란다

그제야.. 욕심의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네스가 3살이 되던 해부터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육아에 지치고 힘들었던 나에게 유일한 취미가 생긴 것입니다.


예쁜 식물로 집을 꾸미고 바라보고 있으면 뿌듯하기도 하고 참 행복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네스를 재우고 분갈이하는 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인 것 같아서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화분이 늘어날수록 식물을 잘 키우고 싶어 졌습니다. 식물 카페에 가입하고 친분을 나누며 식물에 대한 지식을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욕심이 차올랐습니다. ‘sns 친구가 가지고 있는 식물 나도 키우고 싶다’,‘나만 특별한 식물을 키우고 싶다’


나중엔 베란다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식물로 가득 찼습니다. 어디 베란다뿐인가요? 집안 곳곳에 식물을 놓을 곳을 찾았고 빈 공간을 발견하면 어김없이 식물로 채웠습니다.


하루 종일 식물들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야 했습니다. 욕심이 고된 노동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내가 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식물을 키우면서 어떤 행복을 느꼈는지조차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냥 남들이 가진 식물 하나라도 더 갖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더 이상 식물들을 돌볼 시간이 없음을 인지한 순간 베란다에 쌓인 나의 욕심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 갖다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제야 욕심의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식물 카페를 통해 나눔을 하고 지인들에게 식물들을 분양하면서 제가 관리할 수 있을 정도만 식물을 남겨두었습니다.






『시련이 사람을 더 나은 존재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때 그것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빅터 프랭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128p 이시형)
몇해전 아가다네 베란다


욕심껏 식물을 키워 보았습니다. 그 덕분에 책임을 무게와 비우는 삶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능력 안에서 즐기는 소소한 행복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껏 먹어보고 나의 정량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라도 맛있게 즐기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저는 결국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루 24시간 중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로 가득 채웁니다.


그렇게 한가득 채워진 오늘을 스케줄, 하루를 마감할 때면 ‘하지 못한 하나’가 유독 크게 느껴집니다. ‘하지 못한 하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하루를 만듭니다.


그렇게 채우고 채워도 모자랐는지 또 하나를 더 들고 와서 기어기 계획표 안에 넣습니다.


그렇게 조급하게 달리고 달리다가 욕심은 ‘번아웃’으로 미련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자기 비하’로 내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남깁니다. 결국 몸이든 마음이든 어디 하나 고장이 나서야 알게 됩니다.


‘아.. 나 또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구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몇 번의 경험을 하고도 그새 또 잊어버리고 또 미련하게 달리다가 ‘번아웃’이 오고 나서야 나의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아가다 필사독서기록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삶이 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배움을 선택했습니다.


책에서 배우든 나에게 배우든 나의 아이에게 배우든 내 가족에게 배우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배우든... 그렇게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요?!






『‘처음에는 기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야말로 운명적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빅터 프랭클 110p 박상미)

     

이 미련한 짓을 반복하는 이유조차도 말입니다. 이 빌어먹을 헛짓거리 조차도 운명이라면 언제가 나에게도 우연한 기회라는 것이 오겠지요..?!






『의미 있는 일에 등급이 있듯이, 의미 없는 이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그것을 구별하는 중요합니다.』

(빅터 프랭클 27p 박상미)


네, 저는 다시 계획표를 펼칩니다. 가지를 치고 또 쳐내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결국은 다시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렇게 배웁니다.






『의미 없어 보이는 고통도 가치 있는 업적으로 바꾸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로고테라피는 바로 이런 확신의 토대 위에서 체계화된 이론입니다.』

(빅터 프랭클 53p 박상미)


그래요 저는 욕심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욕심을 에너지로 꾸역꾸역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날 저도 제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삶의 의미는 우리가 숨 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발견해야 하는 것이지요. 내가 피할 수 없는 운명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하더라도, ‘고통을 인간의 업적’으로 승화시키면서 삶의 의미를 쟁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빅터 프랭클 53p 박상미)>


나는 알아야 합니다. 매 순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무엇에 대해, 누구를 위해 배움을 선택했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삶의 의미니까 말입니다. 이 욕심이 왜 목구멍까지 차올랐는지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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