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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Jan 23. 2024

초점과 <삶의 의미>

나의 초점은 어디에 있는가?(2024.01.23. 화)


안녕하세요. 글로 상담하는 상담사 아가다입니다.






어제부터 책을 치유의 수단으로_가장 좋은 안식처 the_book_죽음의 수용소에서 독서모임(2기) 시작했어요. 어젠 첫날이라 책을 읽고 만나는 날은 아니었는데, 회원 중에 한 분이 책의 앞부분을 조금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죽음의 수용소에 비하면, (내 삶은) 나은 거구나'


저도 처음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던 같습니다. '그래, 수용소에 비하면 삶은 살만하다'  지금 나의 처지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나의 어려움이 죽음의 수용소 비하면, 더 나은 것 같아서 위로가 되고 삶을 살아가 용기가 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책을 다 읽고 나면 또 한 가지 의문에 사로 잡힙니다. '도대체 내 삶의 의미가 뭐야?' 그리고 내 삶에 의미가 있다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합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에서 남매는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가 자신이 기르는 비둘기가 파랑새였다는 것을 깨닫는 내용으로,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깊은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남매가 '파랑새'에만 초점을 두다가 정작 함께 살고 있는 '비둘기'를 보지 못한 것처럼, '행복은 어디 있어?' 행복, 행복, 하다가 정작 행복하게 살고 있는 나를 놓친 것처럼, '삶의 의미가 뭐야?' '삶의 의미, 삶의 의미'하다가 정작, 의미 있게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됩니다.


빅터프랭클의 로고세러피도 '하나의 삶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빅터프랭클은 삶의 의미에 대해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이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세러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라고 말합니다. 빅터프랭클의 말처럼 우리 삶은 매 순간이 수많은 잠재 가능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은 매 순간 수많은 가능성 중 단 하나만을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아갑니다. 내가 책임 지고 살고 있는 삶, 그것이 바로 '나만의 삶의 의미'입니다.


 빅터프랭클은 삶의 질문에 <책임짐으로써> 답할 수 있으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무엇에 대해, 혹은 누구에게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나> 스스로의 판단에 맡긴다. <나>가 자기 삶의 과제를 사회에 대한 책임에서 찾을지 아니면 자기 <양심>에 대한 책임에서 찾을지 판단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도대체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초점을 두는 대신 나의 책임과 양심으로 초점을 전환하여, 내가 매 순간 무엇에 위해, 무엇에 대해, 혹은 누구에게 책임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나의 '양심'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기울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빅터프랭클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하나에 집착하는 순간 삶은 한 순간에 고정되고 말아요. 삶의 초점은 흐르는 곳을 향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초점>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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