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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Mar 11. 2019

치앙마이에서 글이 가장 잘 써지는 공간

TCDC Design Center

오늘은 글을 오래 앉아 써 볼 요량으로 TCDC Design Center에 세 번째로 방문했다. 이곳은 내가 치앙마이에서 가장 애정을 갖게 된 공간 중 하나이다. 글을 쓰거나 업무를 할 때는 집에 틀어박혀 앉아서 하는 것보다 탁 트인 공간에서 여유를 즐기며 하는 편이 더 집중이 잘된다. 그 공간이 너무 시끄럽지 않고 또 많이 북적이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이 바람직한 장소다. 


치앙마이에는 많은 카페들이 있지만 핫하다는 곳들은 시끌벅적하기 이를 데 없고, 너도나도 즐기는 곳인 만큼 조용히 해주길 바라는 것도 웃기는 노릇이다. 또 너무 인테리어에 치중한 트렌디한 곳들은 노트북을 들고 가서 오래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것도 여간 눈치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TCDC Design Center는 오랜 시간 작업하기에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이곳은 Thai Creative Design Center를 줄여서 TCDC Design Center로 불린다. 올드시티에서 조금 벗어나 핑강 근처에 위치한다. 위치는 조금 생뚱맞지만 그 덕분에 ‘저기가 디자인 센터로군’ 하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Thai Creative Design Center라고 부르기엔 조금 작은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방콕에도 있다. 방콕에 머물 때 알았더라면 방콕의 센터도 가 봤을 텐데 아쉽게 생각한다. TCDC Design Center의 1층에는 작은 전시장이 위치하고, 1층 정원에는 야외 카페가 작게 있다. 그리고 전시장 옆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도서관이 있다. 나는 그 도서관에 앉아 본격적으로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한다. 그리고 늘 몸풀기 전초전(?)으로 1층 카페에서 간단한 사전 작업을 하고 올라간다. 



TCDC Design Center의 매력 중 하나인 이 카페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 카페는 이렇다 할 인테리어가 있는 것도, 눈길을 사로잡는 데코레이션의 음료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꾸 오고 싶어 지는 공간이다. 나는 이곳에만 앉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다. 이 카페에 들르지 않고 바로 2층 도서관으로 올라가 버리는 몹쓸 짓은 차마 용납되지 않는다. TCDC Design Center에 오는 이유 중 8할은 1층 카페에 있다. 카페는 천장은 덮여있지만 양 쪽은 뚫려있어 야외에 앉아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해보니 천장이 덮여있어서 비가 오는 날에 앉아있어도 아주 운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한 열대식물이 관리되고 있는 정원은 아니지만 깔끔한 잔디와 푸르른 나무들이 어우러져서 ‘이 정도가 좋다’는 담백함이 있다. 



카페는 자리가 대략 단체 테이블 한 개, 작은 테이블 서너 개 정도로 크지 않은 공간이라 학생들이 견학을 오지만 않는다면 조용한 분위기다. 내가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치앙마이 대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친구들이 스무 명 정도 견학을 와 있어서 조금 소란스러웠지만, 그것보다도 그때는 그들을 지켜보는 재미에 시끄러운 줄도 몰랐다. 평소에는 카페 손님들 대부분이 노트북으로 협업을 하고 있거나 자기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곳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시며 훈풍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넋 놓고 보고 있으면 보호색을 하고 나무 위를 재빠르게 오르는 징족(태국에서 쉽게 보이는 귀여운 사이즈의 도마뱀이다. 징족은 태국에서 행운의 상징이다. 유해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 도리어 모기나 해충들을 잡아먹어 없애 준단다. 하지만 워낙 재빨라서 30초 이상 마주하기도 쉽지 않다.)을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곳의 사장이라도 되는 듯한 까만 고양이를 만나기도 한다. 


파워 당당!


이 녀석은 다른 치앙마이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아주 당연하다는 듯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니며 잠을 청한다. 


더 웃긴 건 이 녀석이 노트북 옆에 눕던 자기 책을 베고 자던 손님들 누구 하나 꿈쩍도 없이 자기 작업에 몰두한다는 사실이다. 

와..... 이 와중에 이렇게 깊게 잠들 일?


2층의 도서관은 제법 삼엄한 경비 아래 입장을 하게 된다.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여권을 꼭 지참해야 한다. 일일 이용자는 여권을 보여줘야 그 날의 이용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그리고 큰 소지품은 입구의 사물함에 따로 보관 후, 센터에서 제공하는 투명 가방에 노트나 펜 등의 간단한 소지품만 따로 담아서 입장할 수 있다.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은 가드 아저씨가 굳건하게 지키고 있어서 어쩐지 긴장을 불러일으켰지만 내가 수시로 입구와 출구를 헷갈릴 때마다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버선발로 데려다주어서 또 한 번 쓸데없이 긴장했구나 생각했다. 



2층은 말 그대로 도서관이니만큼 아주 조용하다. 발자국 소리, 기침 소리 내기에도 민망하리만큼 조용한 편이다. 처음 이곳에 온 날 남편이 책을 보러 서가에 갈 때마다 슬리퍼에서 꽥꽥대는 오리 소리가 나서 웃음을 참느라 곤욕을 치렀다. 이곳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웅웅 거리는 냉방 소리뿐이다. 냉방이 강한 편이라 이곳을 찾을 때는 늘 봄 가을용 카디건을 챙겨갔다. 한여름에 냉방이 빵빵한 실내에서 도톰한 옷을 둘둘 말고 있는 기분이란 은근히 근사하다. 그렇게 싸매고 앉아 몇 시간이고 글을 썼다가, 책을 읽었다가 할 수 있는 것은 호사라고 생각한다. 



이 도서관에는 명색이 디자인 센터답게 예술 및 디자인 관련 원서가 제법 많다. 작업 중에 머릿속이 꼬이면 슬그머니 일어나 서가로 간다. 읽고 싶은 책들이 상당히 많다. 예술 전공자들이라면 더더욱이 그럴 것이다. 서적마다 실려있는 사진의 퀄리티도 훌륭하다. 그렇게 공부하라고 할 때는 귓등으로 듣더니 이제 와 영어 공부가 하고 싶어 진다. 내 인생은 이렇게 늘 뒷북 인생이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하다 보면 어느새 네 시간이 훌쩍 지난다. 방구석에 앉아 네 시간을 꼼짝없이 보내는 건 쉽지 않은데, 이곳이 나랑 궁합이 좋긴 좋구나 싶다. 이곳에만 오면 망한 글이든 좋은 글이든 글도 잔뜩 써서 싣고 간다. 들어올 때, 나갈 때 공평하게 기분이 좋은 곳이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오니 고양이 녀석이 온데간데없다. 


고양이들이란. 그래, 항상 정드는 건 나 혼자지. 


“고양이가 없네.” 무심한 척 말하면서 시선으로는 오만 구석을 두리번거리다가 길을 나선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진다. 치앙마이의 노을은 늘 다른 곳보다 더 달콤한 오렌지빛이다. 맞다. 이건 순전히 내 기분 탓이다. 배가 고프다. 오늘 내 하루만큼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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