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비행을 못할 수도 있다.

조종간을 맡긴 채, 여기저기 실려다니는 시간

by isol

원하는 비행을 못할 수도 있다.
이 사실은 6년 전이나,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두 같다.

비행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간절함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동료들 중 누군가는 비행을 위해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부족함 없이 하늘을 날아왔다.
나는 간절함만으로 장학금을 따내고, 역경처럼 밀려오는 파도에 떠밀리듯 여기까지 흘러왔다.

내 몸을 흐르는 파도에 맡겨 이곳까지 왔다는 말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변명일지도 모른다.
내 옆의 누군가는 원하는 비행을 마음껏 했더라도,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을 분명 겪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나는 비행에 목마르고, 비행이 좋으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대한민국에서 경제적으로 아주 여유 있는 사람들조차 가끔은 묻는다.
왜 이렇게 한 가지에만 집착하듯 목말라 하느냐고.
그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건지, 안타까워하는 건지, 혹은 부러워하는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비행길만 잃지 않으면, 결국 목적지에는 도착할 수 있으니까.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3년 후의 미래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려보라”는 교관님의 가르침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나는 그림을 그려본다.
비행기는 내가 원하는 기종으로 그려놓았지만, 앞으로의 3년이 내가 직접 조종하는 비행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선배라는 조종사들에게 조종간을 맡긴 채, 여기저기 실려 다니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것도.

이 현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내가 중요하다는 말은 옳다.
하지만 인내는 나를 더욱 갈증 나게 만든다.
불확실함을 현실로 바꾸려다 실패했을 때, 내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도 안다.
그래도 가본다.

내가 가진 경험 안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시야 안에서,
흘러가더라도 선택하고, 결정하고, 나의 비행을 한다.

그게 조종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