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조종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아이다.
꿈을 꾸고 있으니까.
그 꿈은 장면장면 나뉘어 있다.
한 편의 영화처럼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지만,
분명한 장면들은 여러 개를 품고 있다.
원피스의 비행복, 검은색 가죽 잠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아이가 말하는 ‘세상의 다른 아이들만 있는 세계’를 떠올려도
크게 슬프지 않다.
누구에게도 동정이나 공감을 바라지 않지만,
사람들은 종종 감정이입을 하며
내 슬픔을 느끼려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슬픔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슬픔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슬픔에 못 이겨
비행기 속 화재 경고등이 켜져 있어도
그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자신의 감정에 잡아먹혀
추락을 허용해버린
한 조종사의 이야기를
나는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나를 살리는 감정은
분노와 희망, 그리고 의지다.
아이와 나는 함께 비행기를 타고 있다.
비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륙과 착륙이다.
처음과 끝을
안전하게 해내야 한다.
아이의 얼굴에는
미소와 순수함이 담겨 있다.
크리스마스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기대가 가득하다.
비행은 어느 순간 직업이 되어
아이와의 시간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시간의 자유도,
경제적인 자유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비행만 하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비행을 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행복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흐름을 만나기 위해
조금 더 인내해본다.
아이도, 나도 더 성장할 것이고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나게 될 테니까.
그곳에서는 분명,
하늘을 제멋대로 나는 한 마리의 새처럼
완전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만큼의 자유를 누리며
행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