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的少女時代 1

나의 남자사람친구들에게

by 알프레도 토토

항상 먼저 기억되고 이름 불리며 선생님들의 신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지난날의 영광이 존재하기나 했던지 나 스스로 되묻고 싶을 정도로 새로운 생활을 맞이하게 되었다. 시 변두리 한 학년 세 학급―졸업할 즈음에 아래 학년들은 이미 두 학급으로의 감소가 진행되고 있었다―에서 예닐곱 명만 진학한 ◇◇중학교는 한 학년에 아홉 학급이었고 같은 반으로 배정받은 친구라고는 알게 모르게 으르렁거렸던, 초등 4학년 때 전학 왔던, 내가 원하던 지붕이 둥근 집에 사는 남자애 A뿐이었다. 그해 3월 같은 계절은 처음이었다. 상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나 막상 경험하게 된 ‘학생 1’의 생활은 꽤나 서운한 것이었다.

그러나 삶이 그러하듯 서운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지에 위치한 덕인지 넓고 푸른 운동장은 교실 창문으로 바라보며 멍하게 있기에 적합했고, 진정한 틴에이저에 발맞춰 준 듯한 무늬 없는 하얀 커튼도 퍽 낭만적이었다. 천 명에 이르는 학생 중에는 그 창문에 붙어서 꺅꺅거린다든지 그 옆에서 조용히 웃으며 같은 눈빛을 보낼 수 있는 스타 선배도 있었으니까. ‘학생 1’의 생활 또한 그것대로 편한 맛이 있었다. 내가 가졌던 것들이 눈에 띌 때마다 새로운 평가를 받았고, 은근한 욕망덩어리로서 예전의 위치를 찾으려는 노력이 대부분의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1학년 때 기억나는 선명한 장면은 왠지 잘 보이고 싶던 사회 선생님의 세계지리 시간이었다. 관심 밖이던 지리를 열심히 하려는 척을 하려니 힘들던 와중이었는데 어쩌다 우리 지역에 대한 이야기로 흐르고 있었다. 이야기는 ◇◇중학교와 ☆☆중학교에 대한 성향 차이로 이르렀고 대부분의 동창들이 진학했던 ☆☆중학교와 더불어 내가 사는 지역은 우리 시의 할렘으로 명명되었다. 순간, 교사로서의 직감이었던지 미리 하는 사과를 덧붙인, ♧♧동에 사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동에 사는 14살 중 가장 말끔하고 발랐으며 생활이 곤란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우리-나와 A-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고, 당황과 의아 그리고 곤혹이 뭉쳐진 외마디 사과를 끝으로 수업은 끝이 났다. 옆자리였던 A와 나는 쉬는 시간에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고 선생님이 따로 불러 사과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그 날, 나와 초등 동창들만 타던 버스 번호와 천리향 가득하던 우리 집이 다르게 느껴져서 괴로웠던 것은 두고두고 지금도 곤란한 일이다.

2학년이 되면서 나는 온전하지는 않지만 예전과 비슷한 생활을 회복했다. 갓 부임한 담임 선생님 반에서 실장이 되었고 평생의 단짝이라 의심하지 않던 동창 친구와 한 반이 되는 기적도 있었다. 학생회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친구, 선배, 후배들이 나의 이 회복을 이변이나 새로움쯤으로 여기고 있는 듯한 나의 느낌은 이물감처럼 남아있었지만 이제 적당한 포기를 학습한 열다섯살이었다. 열다섯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연결지을 줄도 알았기 때문에 더 예쁜 창문과 더 큰 하얀 커텐이 있는 도서실에서 나만의 ‘오겡끼데스까’를 찾아 다녔다. 그리고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좀 더 세심한 선생님은 내가 이물감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들을 의도하지 않게 마련해주었다. 열여섯은 좀 더 화려하고 새로웠는데 열네살 3월의 나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도 없었을 3월이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스타 자리를 물려받은 아이에게 1표 차이로 학급 실장 낙선이라는 어이없음을 맛보게 한 것이다. 남녀 성비가 2:1이었던 학교 특성을 고려해보면 스타에 대한 남자아이들의 아니꼬움이 나를 실장으로 만들었던 것인데, 충격이 컸던지 그 애는 선거가 끝난 뒤 투표용지를 친히 다시 세어보는 실수를 함으로써 나에게서는 스타의 자리를 보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이에게는 환희이고 누군가에게는 충격일 사건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 3월에 치른 학력평가에서 언제나 1등이었던 스타는 2등이 되었고 열여섯의 ‘학생1’이 1등이 된 것이다. 그 애의 충격이 어떤 내용이었을지 나는 가늠할 수 없다. 내가 ‘학생1’이 되던 순간의 슬픔은 그 아이의 충격에 비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가늠할 수 있는 것은 그 애가 받은 충격의 크기에 못지않게 난 통쾌했다는 사실이다. 그 아이가 다니던 유명 학원은 학원 차량이 가기 귀찮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우리 엄마를 면박주었던 곳이었는데, 학력평가가 끝난 뒤 내가 누군지를 수소문하던 원장이 내 이름을 다시 들을 수 있게 했다는 건 나와 내 친구와 우리 가족의 쾌거였다. 당연하게도 다음 시험부터 졸업 때까지 학생회장이 된 그 애는 다시는 2등을 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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