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的少女時代 2

나의 남자사람친구들에게

by 알프레도 토토

피구보다 축구가 나았던 운동장의 다크호스에서 교복치마 곱게 입은 소녀가 되고 싶었다. 교복치마는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니 그 다음으로 소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보다 성장이 늦어서 키는 작은데 왠지 모르게 딴.딴.해서 돌멩이 같았던 까만 남자애들 말고, 이미 다 자랐던 내가 올려다볼 만큼 키가 크고, 몸보다 말로 표현할 줄 아는 뽀얀 남자애인 것이다!


S

1학년. 입학하고 치른 첫 시험에서 난생 처음 보는 수학 점수에 좀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였다. 아직 이름도 못 외운 녀석 하나가 불쑥 ‘너도 수학 못하는구나?’라는 말을, 기분 나쁘기가 더 어려운 너무도 유쾌한 목소리로 던졌다. 나를 함부로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가 이런 느낌일까. 적당히 하얗고, 말랐지만 비루하지 않고, 여우 같은―사실은 토끼 같았던― 여자애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S. 첫 합격 목걸이를 너에게 주마. 다음 시험부터 난 S에게 배신자로 불렸지만 배신과 사죄는 친교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K

2학년. 엄마가 큰 맘 먹고 사준 세계문학시리즈 앞에서 몇 년 엎드려 놀았다고 내 이름 끝에도 ‘브론테’의 B쯤은 있다고 착각했던 나였고, 부(富)를 막연한 분노와 선입견의 대상으로 여겼지만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는 경험이 없었다. 좀처럼 창문에 붙는 일이 없는 남자애들이 평생의 동경을 담아 오오오 따위를 외치게 한 B는 그 녀석의 아버지였다. K와 내가 인사를 하며 지내게 된 건 B가 아니라 ‘ㅂ’때문이었는데 우리는 만성 비염 환자였다. 그나마 내가 좀 나았는데 시험기간이면 K의 코에서는 물처럼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상해는 있어도 질병은 흔치 않은 그 나이에 같은 질환을 앓는다는 것은 친구가 되기에 모자람 없는 이유가 된다. 어딘지 중학생스럽지 않은 유연함과 다정함이 흘렀던 K는 열다섯의 자존감에 연료를 제공할 줄도 알았다. 연습장 한 권을 자작시로 채우던 나를 ‘소월’이라 불러주고 신작을 묻는 독자가 되어주었으며 방학 때 우표 붙인 손편지를 쓰는 일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부러 무리지어 껄렁거리기도 하지 않았다. 목감기가 걸린 친구에게 야무진 목소리를 못 들어서 속상하다고 표현해주는 산뜻한 남학생이라니. 내가 K를 연애 감정으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지금도 미스터리다. 아들이 받는 편지가 궁금했던 K의 어머니는 역시나 연애 감정이 없었기에 편지를 공유해 주는 아들을 통해 호기심을 해결하시고, 세 번째 밀레니엄의 시대에 손편지를 주고 받는 열다섯의 감성과 치기 가득한 단어 선정에 친히 애정을 표해 주셨다. 다정은 집안 내력이고 부의 내력이었다. 16년이 지난 지금, K는 여전히 부유하다.


H

2학년. H는 x와 y를 받아들이기도 버겁던 대부분의 아이들 사이에서 문제집 주제에 양장이었던 수학의 정석을 보는 몇 안 되는 학생이었다. 축구보다는 농구를 좋아해서인지 키가 껑충 컸고, 뽀얀 피부는 이제 막 여드름을 겪는 여자아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예민미가 있는 H는 역시나 여우 같은(실은 토끼 같은) 여학생들의 높은 옥타브에 까칠했는데 매우 마음에 드는 지점이었다. ‘학생 1’에서 ‘8반 실장’으로 어느 정도 위치를 회복했다는 자신감을 장착하고 친해질 계기를 노리기만 하다가 여름이 되었다. 개도 안 걸리는 그 오뉴월 감기, 그것도 목감기에 걸린 우리는 가창 시험에서 나란히 다음 기회를 부여받는다. 수행평가와 창피함에서 해방된 아이들 앞에서 배가 된 부담감을 공유한 자들에게 유대감 말고 무엇을 줄 수 있을지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자신감과 확신이 있는 H는 희망은 있지만 수치에는 관심 없던 내가 세상의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H가 곧잘 말을 걸고 시간을 갖는다는 사실은 xx염색체의 세계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던 것 같다. y와 x의 세계는 이토록 단순하고 복잡하다.


P

3학년. 부임 2년차의 20대 담임 선생님, 학생회장, 학교의 요정 무리가 모인 우리반은 가장 구석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쉬는시간의 핫플레이스였다. 모든 소식이 늦던 내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던 아이들이 서 있는 뒷문을 혼자서 지나가기란 정말이지 너무 큰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최대한 긴장하지 않은 척 비켜달라고 말하고도 선뜻 가운데를 지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반 실장이라며 비켜주라고 말해주던 그 날 나는 알아봤어야 한다 P를.

실장이었던 나는 부실장이나 학급의 요직을 당연하게 맡은 요정들과 학생회장 무리의 객원 멤버가 되었고 학창시절 중 가장 화려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 속에 P가 있었다. 축구는 목숨, 공부는 그닥이었던 P를 제대로 알아보기 시작한 건 요정 중 한 명이 P를 좋아한다고 우리에게 고백했을 때였다. 이미 긴 생머리를 보유했던 요정들은 곧잘 연애 상담으로 커트머리의 날 찾곤 했는데 그건 내가 입이 무거운 까닭도 있었지만 내가 경쟁상대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거였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던 그날도 난 믿음직스러운 대나무 숲으로 선택되었는데 아뿔싸. 친구의 믿음은 나의 돈오로 변주되었다. 나에게 P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던 때에 이미 P와 그 여자애의 관계는 공표만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심술을 부렸다. 대충 나도 P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너희가 예쁘게 잘 사귀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던 것 같다. 투박한 여자애에 대한 면역이 없던 요정은 착하게도 잘못한 것 없이 긴 사과를 보내고 또 보냈다. 오발탄 뒤처리에는 예상한 대로 믿음직스러운 남자친구가 된 P가 나섰는데, 다음 날 아침 7시에 우리 반 교실에서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아직 동이 제대로 트지 못한 겨울 아침, 내가 좋아하는 하얀 커텐 앞에서 내 마음에 대한 감사와 자신의 마음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던 P.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는 졸업하는 날까지 내가 그들의 객원 멤버로서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하지 않게 해주었다.

서른이 넘은 지금 생각해보면 P에 대한 내 마음은 남자친구라기보다는 남자사람친구였다. 나의 남자사람친구가 누군가의 남자친구가 되는 것이 싫었던 야리꾸리한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소녀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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