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에 부임하기 전까지 십오 년쯤 한 부서에서 일한 후배가 있다. 오랜 시간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산 사이라는 말이다. 일이 무척이나 꼬였던 날.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함께 일했는데, 일 꼬인 걸 엉뚱하게 후배에게 화풀이해댔던 모양이다. 참다못한 후배가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형님은 예수쟁인데 도대체 예수 냄새가 안 난다고 했다. 살면서 가장 뼈아팠던 말이었다.
겉모습과 달리 속으론 그 충격이 꽤나 오래갔다. 트라우마라 할 만큼. 그 후로 내 행동에 대한 상대의 반응에 몹시 민감해졌고, 매사가 조심스러웠다.
사우디에 사는 교민들이 소식을 나누는 네이버 카페가 있다. 요즘은 단체 카톡방이 그 자리를 대체해 이용자가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줄었지만, 십 년 전만 해도 사우디로 이주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질문을 올리면 금방 댓글이 달리고, 하나같이 더 알려주지 못해 안달일 정도였다. 워낙 일상이 단조로운 곳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도 댓글을 잘 달아주는 사람 중 하나였다.
사우디는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 공간에서조차 교회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어느 날 교회를 찾는다는 쪽지를 받았다. 그런 건 쪽지로 연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인연으로 같은 교회 교우가 되었고, 사우디를 떠나올 때까지 서로 의지하는 이웃이 되었다.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하는 자리에서 왜 내게 연락했는지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교회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되는 상황인 건 눈치로 알았고, 누구에게 물어볼지 몰라 망설이는데 아내가 내게 연락해보라고 하더란다. 아무리 봐도 교인인 것 같다면서 말이다. 그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내 행동에서 조금은 예수 냄새가 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비록 짐작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예수쟁이로 들은 최고의 칭찬이었다.
생각해 보니 예수 냄새 안 난다고 후배에게 충격적인 비판을 받고 그나마 조금 예수 냄새를 풍기는 데까지 꼬박 이십 년이 걸렸다. 그러고 보면 철든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내게 전한 이가 여름휴가를 나왔다. 반가운 분들과 만나 저녁을 먹다 문득 그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