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걸어온 길

by 박인식

물러서는 아름다움


지난해부터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부서 일은 모두 부서장에게 일임하고 신규사업에만 매달려 있다. 일을 추진하는 과정을 일일이 챙기지 않으면 어디선가 늘 문제가 생기곤 해서 일임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간간히 걱정되는 일도 있었지만 한 해를 훌쩍 넘긴 지금 보니 내가 일일이 챙길 때보다도 오히려 부서가 더 원만하고 활기차게 돌아간다. 물러설 때가 지나도록 내가 물러서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왕 일임한 것은 일임한 대로, 새롭게 추진하는 신규사업은 궤도에 올라서는 대로 일임하는 게 옳겠다. 물론 일선에서 물러서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다. 그러니 기왕에 후배들이 잘 감당하는 일에서는 손을 떼고 좀 더 긴 안목으로 세상을 살피고 그렇게 살핀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바를 결정하는 일,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2004.12)



평생공부


졸업하고 두해 반을 국책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 연구소에서 지내는 일이 만만할리 없었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했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어서 삶에 큰 보탬이 되었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졸업을 하고 나서도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는데, 그 깨달음이 그 이후 삶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연구소를 나오고 나서도 그곳에서 깨달은 대로 책을 가까이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 맡겨진 역할을 이만큼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비록 두해 반의 짧은 시간,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불안하고 고단한 채로 보낸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내게 은총의 시간이었다. (2007.06)



고난은 두렵지 않으나


신규사업에 진출하면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수없이 실패를 경험해야 할 것으로 짐작했고 그 실패로 주저앉지 않도록 불굴의 용기를 허락해 주실 것을 간절히 구했다. 예상했던 대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구한 대로 불굴의 용기를 허락하셔서 거듭되는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실패가 거듭되던 어느 날, 문득 내가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마음속에 일었다. 내가 들어선 길이 바른 길이라면 실패가 거듭되더라도 해결책을 찾아가고 고통을 감내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거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든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 길이 바른 길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의 평정이 깨졌고 그로 인해 한동안 갈등과 번민 속에서 지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수주가 이루어져 기대했던 신규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고난을 감내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고난의 끝에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면 얼마든 그 고난을 감내할 각오도 되어있고 그럴 자신도 있다. 문제는 내가 얻기 원하는 그것이 옳은 것인지 확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 문제는 계속되고 있는데 언제쯤이나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2007.12)



이귀선 목사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될 때이니 아마 고등학교 1학년이었지 싶다. 신일학교 교목으로 계시던 이귀선 목사님께서 예배 시간에 이런 설교를 하셨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어서 온 국민이 이를 대견해하고 축하하고 있습니다.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국민이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고속도로 때문에 논이 양편으로 나뉘어서 논에 가려면 십리만큼씩이나 돌아가야 하는 농민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어려움 때문에 고속도로를 건설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아픔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가능하면 그런 아픔을 감수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뭘 알았을까. 그런데도 그 가르침은 그 후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꼭 필요하고 옳은 일이라고 해도 혹시 그 일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려고 하였다. 그래서 아이 하나가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내 그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애썼고, 그것 때문에 얼마큼은 세상이 나아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꼭 한 번은 목사님께 전해드리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을 때 목사님께서는 강직한 성품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국땅에서 이십 년 가까이 이방인으로 머물러 계셔야 했다. 몇 년 전 목사님께서 귀국하셨고, 오늘 다른 은사님의 팔순 잔치에 참석하신 목사님을 만나 댁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비로소 그 말씀을 드릴 수 있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 가운데 혹시라도 칭찬받을 만한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신일학교에서 이귀선 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난 덕분이 아닐까 한다. (2008.09)



축의금에 담긴 뜻


평생 모시던 상사께서 자식 결혼식에 과분한 축의금을 보내셔서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왜 그렇게 많은 축의금을 보내셨는지 여쭤봤다. 당신 형제에게 하는 만큼 했다고 하셨다. 평생 부하직원으로 이끌어준 것도 모자라 형제로 여기셨다니 감사함을 넘어 코끝이 시큰해졌다. 이만하면 성공한 직장생활이 아닐까? (2009.12)



지난 세월


게으르지 않았지만 남보다 더 많이 수고한 건 아니었고 그저 내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하려 애썼다. 다만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세상을 내다보고 그에 잘 대응하려 노력했을 뿐이다. 앞으로도 그 중심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2010.07)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


스스로 신문을 선택하게 된 이후부터 계속 조선일보를 보아왔다. 조선일보를 보기 때문에 성향이 그렇게 된 건지 성향이 그래서 조선일보를 보게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선일보라는 고유명사가 지닌 성향이 내게 있다. 오마이뉴스의 행보는 내 성향과 크게 다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호불호의 문제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인터넷 즐겨찾기에는 단연 조선일보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뜻밖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으로는 오마이뉴스가 올라있다. 그들의 주장이나 성향에 동조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왼쪽으로 얼마나 치우쳤나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내가 오른쪽으로 얼마나 치우쳤는지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2010.08)



나의 그릇


지금껏 수많은 고비를 만나왔으니 이제는 어지간한 고비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내성이 생길만도 한데, 지금도 고비를 만나면 염려와 두려움이 드는 건 매한가지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이 오히려 크게 느껴진다. 물론 지난 세월에 만난 고비가 한둘이 아니었고 그 모든 고비를 잘 넘겨 지금까지 왔으니 지금 만난 고비도 또 그렇게 넘어갈 수 있기는 하겠는데, 그런데도 고비를 만나면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나의 그릇이다. (2010.08)



무대장치


사람은 뒷모습으로 평가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퇴장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부터 아름다운 모습으로 퇴장하고 싶었다. 부서가 오랫동안 곤경에 처해있을 때 회사를 떠나는 것이 선배로서 경영에 책임지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다 망가뜨려놓은 상태로 떠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부서를 정상궤도에 다시 올려놓은 후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부서가 회복을 지나 도약의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중동사업 담당으로 자리를 옮기며 부서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떳떳하게 떠나올 수 있었고,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오늘 새벽, 목사님을 통해 바나바를 만났다. 그는 사도들이 일컬어 ‘권위자’라고 하던 사람이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던 회심한 바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소개했고,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교회 목회자로 파송할 때 굳이 다소까지 찾아가 그를 동역자로 초청하였다. 그랬음에도 바울이 베드로의 외식을 비판할 때 바나바 역시 베드로와 함께 비판을 받았고, 전도여행 도중에 포기한 마가를 끝까지 껴안으려다 바울과 크게 다투고 갈라서기까지 했다. 이렇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서로 무관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사람을 아끼는 바나바의 성품이 삶으로 드러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성경이 그를 가리켜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하지 않았겠나. 그 후로 바나바는 그렇게 잊혀졌다. 그로 인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바울이 예수님의 최후 명령인 이방선교의 장을 연 것이다. 결국 바나바는 바울의 등장을 위한 무대장치요 디딤돌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의 퇴장이 아름다워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떠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나 오늘 새벽 바나바를 만나면서 내가 부서를 물려주고 떠난 게 아니라 내 자신이 후배들이 전면에 나서기 위한 무대장치였으며 디딤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도 억울하지 않았다. 섭섭하지도 않았다. 능력 있는 후배들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무대장치로 나를 사용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스스로 평생 나를 품어준 회사와 부족한 사람을 믿고 따라준 후배들을 위해 디딤돌 하나 놓는 심정으로 이곳에 왔다고 하지 않았나. 앞으로 디딤돌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삶 또한 디딤돌을 놓는 일련의 작업이었다. 회사와 후배의 미래를 위해 디딤돌 하나 놓는 심정으로 왔다는 이곳에서 혹시 무대장치가 아니라 주연이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런 마음이 심연 저 어디쯤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욕심을 내지 말 일이다. 억울해 하지도 말 일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디딤돌 삼아 후배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을지, 그것만 고민하면 될 일이다. 그만큼만 해도 하나님께 칭찬받을만하지 않을까? (2011.02)



새로운 일


해보지 않은 일을 앞두고 두려움이나 염려보다는 호기심, 기대감, 이 일을 통해 얻을 후 있는 새로운 경험 때문에 마음이 설렌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운 경험을 얻어서 어쩌자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그런 대견함을 허락하셔서 감사하다. (2012.02)



나이가 벼슬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떻게 거기서 빠져나올지 궁리하는데 급급했다. 세월이 지나니 그 어려움을 통해 내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나에 생각이 미쳤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니 그 어려움이 내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은 건 아닐까, 그 어려움에 어떻게 반응하는 게 지혜로운 길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걸 보니 나이가 벼슬이라는 옛말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었구나 싶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기는 한데 조금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겠다 싶어 아쉽다. (2012.05)



지난 날


나는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기억이 없다. 매 순간 힘을 다해 살았고, 그보다 더 열심히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2014.01)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논어를 보면 공자께서 살아온 일생을 짤막하게 정리하였으니 “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삼십에 세웠고, 사십에 미혹됨이 없었고, 오십에 하늘이 나에게 내린 명령을 알았고, 육십에 귀가 순하여졌고, 칠십에는 마음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함이 그것이다. 육십이 되었는데 귀가 순하여지기는커녕 오십이면 이른다는 하늘의 명령을 깨우침에도 미치지 못했다. 칠십이면 마음대로 행동을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데, 과연 내게 그런 세월이 오기는 할까? (2014.03)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먼저 지혜로운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 사람이 명민하지 못해 매번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내린 결정이 어리석은 것이 되지 않도록 언제나 힘을 다해 살았다. 6년 전 마지막 임무로 중동사업을 선택한 것은 아직 진행형이다. 그 선택이 지혜로운 결정이 되도록 힘을 다해 살고 있으니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2014.04)




살면서 수많은 벽에 부딪혔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 벽 때문에 주저앉게 될까 두렵기도 했고, 그 벽을 뚫고 넘어갈 길이 있다고 해도 그를 감당할 일이 아득해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미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 벽은 지금도 앞길을 수없이 막고 있고, 그를 이겨내기 위해 감당해야할 짐은 늘면 늘었지 조금도 줄어들 줄을 모른다. 다만 세월이 흐르니 이전만큼 두렵지는 않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지금은 두렵지는 않지만 걱정스럽기는 한데, 세월이 좀 더 흐르면 걱정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2014.06)



선물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은 선물로 받은 것이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이 내 노력의 결과라면 나보다 더 수고하고도 훨씬 덜 누리고 사는 삶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2014.08)



부활


이생의 삶이 끝나면 우리 평생 중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부활할 텐데,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풋풋하던 청년, 힘 넘치던 중견... 아니다. 머리에는 서리가 내리고 몸도 성한 곳을 찾기 어렵지만, 그래도 지나온 세월에 감사할 수 있고 예전보다는 조금은 너그러워진 지금 모습이면 좋겠다. (2015.04)


매거진의 이전글[신념]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