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갓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면서 처음 만난 외국인이 캐나다에서 온 지질기술자였습니다. 막내이다 보니 선배들이 미뤄놓은 일이 모두 내 차지였고, 외국인 기술자를 공항에서 맞아 현장까지 데려다주고 필요한 걸 챙겨주는 일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처음 만났던 그분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매우 점잖고 친절했던 분이었지요. 그 후에 만난 분들도 대체로 그랬습니다.
이제 오랜 시간이 흘러 내가 그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때 만났던 분들보다 훨씬 나이가 더 들기는 했습니다만. 그때 만난 분들은 대체로 사십 대쯤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주로 설명하는 역할을 맡다 보니 아무래도 이곳 젊은 기술자들이 나를 편하게 대하기가 어렵기는 할 겁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다지 사납지는 않은 편이고, 사석에서 만나면 편안하고 재미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이전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만. 그렇기는 해도 업무에 관한 이야기가 재미있거나 다정하게 들리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를 만나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 친구는 아니라고 설명하는 데도 자꾸 우겨서 조금 불친절하게 대답했더니 이젠 가까이 가기만 해도 불편해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문득 예전에 만났던 지질기술자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게까지 친절하다는 말을 듣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적대감은 주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반성하는 마음이 물씬물씬 올라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말인데도 쌀쌀한 바람 맞으며 교육 시간에 알려준 대로 일하고 있는 두 젊은 친구에게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했지요. 뜻밖에 순순히 따라나서네요. 나 같으면 더럽고 치사해서 안 먹는다고 했을 건데 말입니다.
둘 다 미혼인데, 일할 때 만나던 모습과는 달리 식사할 때 아주 밝고 환하더군요. 수다스럽기도 하고. 글쎄 그런 친구들이 말을 더듬게 했으니 내가 나쁜 놈이지요. 그저 그럴 때 벽을 허무는 게 식사만 한 게 없습니다. 같이 밥 먹으면 식구 아니겠습니까. 기대했던 대로 환하게 웃으며 헤어졌습니다.
헤어지면서 월요일 아침 회의는 예정대로 하냐고 묻네요. 아침에 멀리서 현장까지 와야 하니 아침 회의에 맞춰 도착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습니다. 물론 그게 자기가 아니라 현장 기능공들 이야기라고는 했습니다만, 그걸 못 알아들을 정도로 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보고할 걸 내가 대신하겠다고, 회의 주재하는 분께 잘 말씀드리겠다고, 염려 말고 다녀오라고 했지요.
오래전에 본 영화 ‘웰컴투 동막골’이 생각납니다. 외지인 하나가 마을이 어떻게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느냐고 물으니 촌장이 이런 말을 했지요. “그저 마카 잘 믹이야 해”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믹였습니다. 잘~ 까지는 아니고.
모처럼 바깥 자리가 비어서 앉았더니 날씨가 제법 썰렁하네요. 그러면 그렇지 빌 자리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긴팔 옷을 챙겨야 하려는 모양입니다. 서울에는 처서에 왠 더위냐고 난리라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