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체코일기 2025.11.23 (일)

by 박인식

이번 주에는 모라브스키크룸로프(Moravský Krumlov)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지 않습니까? 한국인들이 체코에서 프라하 다음으로 많이 찾는 관광지가 바로 체스키크룸로프이지요. 크룸로프는 강이 크게 휘어진 지형을 말한답니다. 안동 하회마을처럼 말이지요. 하회(河回)마을을 물돌이동이라고도 한답니다. ‘내 하(河)’에 ‘돌 회(回)’라는 한자 그대로 물이 돌아나간다는 게지요. 크룸로프가 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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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가려던 곳은 여기가 아니라 서쪽에 있는 트르시슈트(Třešť)인데, 구글맵에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은 곳을 다녀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지요.


이곳에 들어서면 두 곳이 눈에 띕니다. 마을 초입에 있는 모라브스키크룸로프 성(城)과 언덕 꼭대기에 우뚝 솟아있는 성 플로리안 교회(Kaple Svatého Floriána)입니다. 1690~1696년에 지었답니다. 조선 숙종 때로군요.


성 플로리안은 불이나 홍수, 화재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호성인으로, 오스트리아나 체코와 같은 중앙 유럽에서 널리 숭배되었다는군요. 여기 올라가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형으로 보면 영락없이 물돌이동인데, 물은 보이질 않습니다. 아마 옛날에 있었던 게 지형이 바뀐 것 같기도 합니다. 후기를 보니 문이 늘 열려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겨울이어서 그런지 큰 자물쇠가 걸려있더군요. 참, 여기서 올해 첫눈을 만났습니다. 십 분 거리에 있는 우리 현장에는 눈이 비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날씨는 꼭 눈 올 것 같기는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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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브스키크룸로프 성은 13세기에 최초로 지어졌고, 지금 모습은 16세기에 재건한 거랍니다. 17~18세기에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소유했다가 20세기 들어서면서 국가 소유로 넘어갔다는데, 전쟁과 체제 변혁기여서 관리가 제대로 안 되었다더니 실제로도 건물 하나는 유리창이 온통 깨져 있었습니다. 지금껏 어디에서도 이렇게 방치된 건물은 보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2010년부터는 체코 민족 화가인 무하의 대형 연작 ‘슬라브 서사시(The Slave Epic)’ 전시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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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는 19세기 말 파리에서 활동하다가 1910년 고국으로 돌아와 슬라브 정체성을 담은 독창적 예술세계를 펼쳤을 뿐 아니라 예술을 통해 조국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 했습니다. 바로 70여 점의 대형 연작인 ‘슬라브 서사시’가 이 성에 전시되어있는 것이지요. 마감이 한 시간도 안 남았을 때 들어가 제대로 살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림이 보통 2층 높이는 될 정도로 엄청나게 큰 작품이었습니다. 입장료 290코루나(2만 원). 그런데 저는 190코루나만 내고 들어갔습니다. 우리 주민등록증 보여주고 할인받았지요. 요즘 주민등록증을 쏠쏠하게 잘 써먹고 있습니다. 여기도 65세면 경로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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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근처 건물에 박물관 이름이 붙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지요. 체코 전통 인형극에 사용하는 마리오네트 박물관이었습니다. 모르고 지나쳤으면 몹시 아쉬울 뻔했습니다.


마리오네트 잘 아시지요? 인형에 실을 늘어뜨려서 위에서 조정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연극을 펼치는 것이지요. 사운드오브뮤직에 나오는 인형극이 바로 마리오네트입니다. 체코에서 살만한 선물로 바로 이걸 꼽을 만합니다. 값이 만만치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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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글에 따르면 체코 인형극은 18세기 말에 이미 생업이자 가업으로 자리 잡았고, 특정 가문에 의해 대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인형극 가문이 마차에 인형과 무대 배경, 무대 장치를 싣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공연했다는 것이지요. 당시 큰 도시 극장에서는 받아주질 않아 주로 작은 마을이나 농촌을 다니며 공연했습니다.


보통 보리수나무로 만들고 각 부분을 실이나 철사로 엮었는데, 이때 조각은 성당 장식이나 성상을 깎던 솜씨였지요. 이곳에 전시한 마리오네트 인형은 체코 인형극 연구자 부부의 소장품으로 체코에서 가장 방대한 컬렉션 중 하나입니다. 체코 인형극은 2016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랐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일하는 두코바니 원전이 석양을 받은 모습이 기가 막혀 한 장 찍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현장에 눈이 온답니다. 제가 철없이 눈을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눈 때문에 고생 좀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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