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변화에 둔감해졌습니다. 새로운 걸 봐도 설레지 않고, 상황이 바뀌어도 낯설다는 느낌이 없이 바로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리야드에 살 때는 그게 당연했고 서울에 휴가 오면 언제 리야드 살았나 싶더니만, 체코 현장에서 일하다가 휴가 온 지금은 언제 거기서 일했나 싶습니다. 며칠 있다가 현장으로 돌아가면 서울은 까마득하니 잊고 지내겠지요.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리 가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요. 그중 제일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게 “10대 때 1년은 인생의 1/10을 지나는 것이고 70대 때 1년은 인생의 1/70을 지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세월만 빨리 지나는 게 아니라 감동도 그만큼 줄어드는 모양입니다. 경험한 게 많으니 이미 경험한 감동을 뛰어넘는 일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래서 매사에 무덤덤합니다.
몇 년 전부터 아들 내외가 제가 제대로 못 듣는 것 같다고 걱정했습니다. 강권해서 청력검사를 받았지요. 동갑인 바깥사돈도 같은 처지여서 보청기를 끼기 시작했는데, 효과도 좋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진작에 할 걸 그랬다고 하시더라면서 서울 가면 보청기를 쓰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입니다. 여태 안 하고 버텼다는 말이지요.
눈이 나쁘면 안경 끼듯 안 들리면 보청기를 끼는 거라고 합니다. 눈 나빠서 안경 쓰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듯 안 들려서 보청기 끼는 거도 이상할 일이 아닙니다. 말은 그렇지요. 그런데, 보청기 끼는 거와 안경 끼는 게 같을 수는 없더군요. 꼼짝없이 나이 들었다는 걸 인정해야 하니 말이지요.
제가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소심합니다. 겁도 많아요. 겉으로 그렇지 않은 척하는 건 사회생활 하면서 익힌 위장술일 뿐이지요. 그래서 작은 변화에도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나이가 드니 여러 곳이 망가지기 시작하는데, 병원에서는 하나같이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건 꿈꾸지 말라고 합니다. 소심한 예전 모습 같으면 그것 때문에 속을 끓였을 텐데, 요즘은 이상하리만치 너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랄 정도예요.
그래서인지 이번에 보청기를 아주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안 보여서 안경 끼듯 안 들려서 보청기 끼는 게 뭐 어떠냐, 그런 마음이지요. 성탄절 전야인 엊저녁에 찾았습니다.
잘 들리네요. 너무 잘 들려서 오히려 크기를 조금 줄일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도 섣불리 줄이는 것보다는 며칠 사용해 보고 결정하는 게 나을 거라는군요. 끼는 게 생각보다 불편하지도 않고, 귓속에 쏙 들어가서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젠 뒤에서 흉보지 마세요. 다 들립니다.
성탄에 귀가 열리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모든 분에게 크고 작은 성탄의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