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 아범이 오늘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눈 처녀 The Snow Maiden>에 겨울의 정령 ‘모로즈(Moroz)’와 국왕의 조언자 ‘베르먀타’ 이중 배역을 맡아 출연합니다. 저는 이 작품은 물론,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오페라를 작곡한 사실도 몰랐습니다. 혜인 아범도 이번 공연이 롤 데뷔입니다.
오늘 공연이 프리미어 공연입니다. 해당 프로덕션의 첫 공연이라는 말이지요. 당연히 가장 잘하는 가수가 섭니다. 극장에서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프리미어 공연에는 비싼 돈을 들여 객원 가수를 초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두 번 그렇게 하고는 극장에 소속된 가수가 이어받습니다. 사실 혜인 아범도 프리미어 공연에 서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이제는 당연히 프리미어 공연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만.
러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작품을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오페라로 인식되고 있어 신년이나 마슬레니차라는 봄맞이 축제 전후로 주로 공연한답니다. 독일에서도 자주 공연되는데, 혜인 아범처럼 두 역을 맡아 출연하는 게 일반적이라는군요. 재미있는 건 이 두 역할이 각각 다른 세계를 상징한다는 겁니다.
그걸 설명하자면 먼저 줄거리를 소개하는 게 순서겠네요. 4막으로 이루어진 오페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프롤로그>
겨울의 정령인 ‘모로즈’와 봄의 여신 ‘Spring Beauty’ 사이에서 딸 스네구로치카(눈 처녀)가 태어납니다. 그녀는 눈처럼 순수하지만,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차가운 마음을 지녔습니다. 부모는 딸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걸 보면서 딸이 인간 세계를 동경하자 결국 베렌데이 마을로 보내 인간들과 함께 살게 합니다.
<1막>
스네구로치카는 가난한 노부부 보빌과 보빌리하의 집에 맡겨집니다. 마을은 봄 축제를 준비하며 활기로 가득한 가운데 젊은 가수 ‘렐’이 멋들어진 노래로 사람들을 매혹합니다. 그녀는 렐에게 끌리지만, 그것이 사랑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녀의 차가운 모습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혼란과 갈등을 겪습니다.
<2막>
베렌데이 왕국의 왕 베렌데이는 최근 이어지는 추위와 흉작을 걱정합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에 태양신 야릴로의 노여움을 샀다고 믿습니다. 왕은 사랑과 결혼을 장려하는 의식을 준비하는데, 이 과정에서 스네구로치카의 존재가 왕과 궁정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3막>
스네구로치카는 자기가 사랑을 느끼지 못해 다른이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결국 어머니 봄의 여신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봄의 여신은 딸의 소원을 들어주지만,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 태양의 빛 아래서는 살 수 없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4막>
스네구로치카는 마침내 사랑을 느끼고 그 기쁨을 남성에게 고백합니다. 바로 그 순간, 태양신 야릴로의 빛이 세상을 비추고 그녀는 햇살 속에서 녹아 사라집니다. 그녀가 그렇게 녹아 사라지면서 긴 겨울은 끝나고, 자연 질서가 회복되고, 베렌데이 왕국에는 봄과 풍요가 돌아옵니다.
○ 스네구로치카: 소프라노, 주인공 눈 처녀
○ 모로즈: 베이스, 겨울의 정령으로 스네구로치카의 아버지, 자연 세계를 대표함
○ Spring Beauty: 메조소프라노, 봄의 여신으로 스네구로치카의 어머니
○ 베렌데이: 테너, 베렌데이 왕국의 왕
○ 베르먀타: 베이스, 베렌데이 왕의 측근
○ 보빌: 테너, 스네구로치카의 양부
○ 보빌리하: 메조소프라노, 스네구로치카의 양모
혜인 아범이 이중 배역을 맡은 이 두 인물은 각각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를 대표합니다.
겨울의 정령 ‘모로즈’는 사랑하는 딸이 인간 세계를 동경하자 딸이 사랑을 알게 되면 녹아 없어진다는 결말을 알면서도 보냅니다. 딸의 결말을 아니 가슴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해서 딸 하나 때문에 자연 질서를 깨뜨리지는 않습니다. 그는 1막에서 딸에게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 녹아 없어질 것”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알려주고 물러납니다.
‘베렌데이’ 왕의 측근이자 국가 원로로서 ‘베르먀타’는 추위와 흉작이 닥친 왕국의 안정과 공동체의 행복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한 개인의 고통보다 질서를 유지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이질적인 존재인 눈 처녀 ‘스네구로치카’를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인식해 보호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래서 사랑을 느낀 ‘스네구로치카’가 녹아 없어지는 걸 보고만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모로즈’는 1막에서 딸에게 비극적 결말을 알려주고 퇴장하고 2막부터는 ‘베르먀타’가 등장해 극을 이끌어나갑니다. 그렇게 상반된 두 인물을 모두 베이스로 설정해 놓았다는 건, 어쩌면 작곡자가 두 상반된 인물을 한 사람이 연기하도록 장치를 만들어 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이 작품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에겐 낯선 작품이어서 자료를 찾기도 쉽지 않았지요. 위의 글을 여기저기 뒤져서 꿰맞춘 것입니다. 내용이 잘못된 게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유튜브에 세 시간 반짜리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공연물이 올라와 있더군요. 아쉽게도 자막이 불어로 되어 있네요. 대충 훑어보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겨 걸립니다. 언제 한번 차근차근 봐야겠습니다. 이렇게 예습했으니 실제로 보면 지루하지는 않겠네요.
그나저나 가사가 러시아어로 되어 있던데, 외우느라 머리에 쥐가 났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Kt-rmZpd8&list=RDwwKt-rmZpd8&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