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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02. 2022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논란과 진실

후쿠시마 원전사고 교과서

백원필ㆍ양준언ㆍ김인구

동아시아

2021년 12월 10일


졸업하고 첫 출장지가 월성원전 2ㆍ3ㆍ4호기 지질조사 현장이었다. 그 후로 사우디 원전사업에 이르기까지 40년 넘게 원전시장을 맴돌고 있다. 현업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사우디에서 그 경험을 꽃 피워볼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다가 본국에서 전해온 느닷없는 탈원전 선언에 망연자실했던 게 바로 어제 일 같은데 벌써 5년이 흘렀다.


탈원전 결정을 내린 주체들이 근거로 내세운 것이 2011년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사실 탈원전 결정을 내릴 때까지만 해도 이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거의 모르고 있었고, 그저 원전사업이 당분간 위축되겠다는 정도 생각 밖에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견해를 정리하기 위해 두 달 동안 17편의 글을 썼다. 그 중 네 번째 글인 <원전 사고>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2011년 3월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쓰나미가 원전을 덮쳤고, 이로 인해 비상발전기가 침수되어 작동하지 않음으로서 전기 공급이 끊기고, 노심 냉각이 이루어지지 않아 노심이 용융되고 원전건물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다수의 원자로가 동시에 녹아내린 최초의 사례이고, 이로 인해 태평양을 포함한 일대를 방사능으로 오염시켰다. 이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해안방벽을 쓰나미 최대 높이보다 낮게 설치한 데 있다. 이로 인해 쓰나미가 해안방벽을 넘어 비상발전기가 침수되고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설계 당시 쓰나미 최대 높이를 10m로 상정하여 해안방벽을 설치했지만 사고 당시 실제 높이는 15m였다. 도쿄전력은 운영 중이던 2008년에 자체적으로 쓰나미 최대 높이가 15.7m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음에도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진앙에 더 가까웠던 오나가와 원전은 해안방벽을 충분히 높게 설치함에 따라 파고가 후쿠시마보다 더 높았음에도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오나가와 원전은 3개월간 피해 주민들의 대피소가 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1,368명이 사망하였다고 언급한 일이 있는데, 이후 일본정부가 항의하자 이는 일본 도쿄신문에서 발표한 ‘원전사고 관련 사망자’를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관련 학계와 언론이 극명하게 갈려 수많은 성명이 발표되고 소위 전문가의 견해나 난무했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룬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불과 몇 줄 되지 않는 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보고서와 저널을 뒤져야 했다. 탈원전을 반박하는 입장에 서있던 나로서는 탈원전의 근거로 내세우는 후쿠시마의 원전사고 내용이 상당히 왜곡되었는데도 그것을 반박할 자료 하나 제대로 정리해놓지 않은 원전 업계가 여간 실망스럽지 않았다.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그런 관점에서 이번에 관련 학계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논란과 진실>을 한 권으로 정리해 낸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읽는 책 마치는 대로 읽어보려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저자인 백원필 박사를 만날 기회가 생겨 저자 서명이 담긴 책을 선물 받았다. 먼저 읽고 저자를 만나는 게 도리였을 텐데 읽지도 않고 더군다나 저자 서명이 든 책까지 선물 받아 여간 민망하지 않다. 열심히 읽고 나름의 소감을 정리하는 게 미안함을 더는 길이 아닐까 싶어 열흘 가까이 붙들고 씨름했다. 그렇기는 했어도 사고 처리 과정이나 오염에 대한 평가는 너무 전문적이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사고의 원인이 되었던 쓰나미 대응 상황과 그로 인한 피해에 초점을 맞췄다.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방사선물질 누출


저자는 동일본대지진의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일부가 침수되고 방사선물질 누출로 이어진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일본 지진 관측 역사상 최대인 규모 9.0 지진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북동쪽으로 180km 떨어진 태평양 해저에서 발생했다. 비록 설계기준을 넘은 강력한 지진이었지만 어떤 안전관련시설도 지진으로 인해 파손되지 않았다. 지진 발생 후 41분과 48분 두 차례에 걸쳐 쓰나미(지진해일)가 후쿠시마 원전에 밀어닥쳤다. 첫 번째 쓰나미는 파고가 4m여서 피해를 입지 않았다. 두 번째 쓰나미는 파고가 13m에 이르러 해발 10m에 건설한 원전 일부가 침수되면서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았고 일부 기기가 손상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1~4호기는 설계기준 쓰나미 높이를 5.7m로 산정해 해발 10m에 원전을 건설했다.) 이로 인해 원전에 전원이 공급되지 않았고, 그 결과 제어실이 마비되고 붕괴열을 냉각시킬 수 없어 노심이 녹고 격납용기가 파손되는 사고가 일어나고, 최종적으로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원전 외부로 누출되었다. 그러나 해발 13m에 건설한 원전 5ㆍ6호기는 침수 피해가 적어 방사성물질 누출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설계기준이 넘는 지진이 일어났음에도 원전시설이 파손되지 않았지만 설계기준이 넘는 쓰나미가 밀어닥쳐 원전이 침수되고 결국 방사성물질 누출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설계기준을 넘는 지진이나 쓰나미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설계기준이 잘못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니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생각해보겠다.


이 중 쓰나미는 잘못된 설계기준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을 소유한 도쿄전력은 “지금까지 대형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앞으로 대형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의 의견을 고려해 2008년 후쿠시마 원전에서 규모 8.3 지진이 발생할 경우의 쓰나미 수위를 다시 평가했다. 그 결과 최고 수위가 15.7m에 이를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같은 해에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사다케 박사의 연구결과를 활용해 쓰나미 수위를 또 한 번 평가했는데, 이번에는 최고 수위가 8.9m에 이를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도쿄전력에서는 이 평가에 사용한 여러 변수가 매우 보수적이라는 이유로 이 결과대로 시설을 보완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때 조치를 취했더라면 최고 수위가 13m였던 두 번째 쓰나미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8일 전인 2011년 3월 3일에도 문부과학성 회의에서 원자력안전보안원이 이 문제를 거론했지만 공식적으로 도쿄전력에 쓰나미 보완대책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폭발이나 방사선 피폭으로 발생한 피해


저자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동일본대지진 관련 사상자는 다음과 같다.


“2021년 3월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15,899명, 행방불명자는 2,526명, 부상자는 6,167명이다. 쓰나미 때문에 익사한 사람이 90.6%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진으로 인한 압사 4.2%, 화재로 인한 사망 0.9%, 원인 불명 4.2%이다. 원전에서 일어난 수소폭발이나 방사성물질 누출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다. 이와는 별도로 일본 부흥청은 지진재해 관련 사망자를 3,767명으로 발표했다. ‘지진재해 관련 사망자’는 ‘재해조위금 지급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재해가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에 한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1,368명이 사망하였다고 언급한 일이 있는데, 이후 일본정부가 항의하자 이는 일본 도쿄신문에서 발표한 ‘원전사고 관련 사망자’를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저자가 언급하고 있듯 이는 원전사고 당시 일어난 폭발이나 방사선 피폭에 의한 사망자가 아니다.


일본 부흥청이 발표한 지진재해 관련 사망자 3,767명 중 연령으로는 66세 이상 노인이 3,335명, 지역으로는 후쿠시마 주민이 2,313명이라는 점으로 볼 때 ‘노령의 후쿠시마 피난민’ 피해가 가장 컸음을 알 수 있다. 원전사고로 인해 후쿠시마 주민의 복귀가 늦어지고 피란생활이 길어지면서 특히 노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이 가중된 것도 피해가 늘어난 한 가지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원전사고로 인해 사망한 것은 아니지만 원전사고 때문에 피란생활이 그렇게 길어지지 않았더라면 ‘노령의 후쿠시마 주민 사망자’는 이보다 줄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책임을 원전사고로 돌릴 수는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 정부에서 “원전사고 당시 일어난 폭발이나 방사선 피폭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을 “원전사고로 1,368명이 사망하였다”고 언급한 것은 왜곡을 넘어 선동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와 별개로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질병과 관련해서는 아직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암 발생은 잠복기가 백혈병의 경우 5~15년, 고형암의 경우 10~60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발병 사례가 없다는 게 아니라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숫자는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다.


원전 안전성 확보 기준 강화


저자는 그동안 원전을 설계할 때 “자연현상이 부지에 미칠 수 있는 최대 위험을 경험에 기초해서 정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며, 이미 경험한 최대의 위험에 보수성을 더해 자연조건을 정하고 이렇게 정해진 자연조건에 다시 안전여유를 더해 원전을 설계하는 방식을 취했다”(p.285)고 설명한다. 동시에 “후쿠시마 원전 2ㆍ3ㆍ5호기에서 설계기준보다 더 큰 지반진동이 측정되었다”(p.151)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일어난 가장 큰 지진보다 더 큰 지진이 일어나도 그로 인해 발생한 지반진동에 안전하도록 원전을 설계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보다 더 큰 지반진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원전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설계기준보다 큰 지진이나 쓰나미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탈원전의 명분으로 주장할지도 모른다. 모든 설계기준이라는 것이 인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정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걸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이고.


저자는 11장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자 우리나라는 최악의 원전사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안전점검 분야와 대상을 선정하고 순차적으로 점검을 실시했을 뿐 아니라 극한의 자연재해에도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며 그 사례를 열거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움직임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이전에 설계지진(지반진동가속도 G=0.2)이 발생하면 운전을 중단하던 것을 설계지진의 90% 크기의 지진이 발생하면 운전을 중단하는 것으로 기준을 강화했다. 또한 이에 필요한 계통의 내진성능을 재평가해 신형 원전의 수준(G=0.3)까지 높였다. 아울러 국내에서 발생 가능한 최대 지진을 전면 재검토했다. 이 모든 조치는 2019년 상반기에 모두 완료되었다.”


“2011년 5월 유럽원자력안전규제자그룹(ENSREG)은 원전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극단적인 자연현상을 고려해 안전 여유도를 재평가하는 Stress Test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각국의 원전사업자는 같은 해 10월까지 자국 규제기관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하고, 각국의 규제기관은 같은 해 12월에 UNSREG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UNSREG는 이를 바탕으로 1)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사고에 대한 안전 여유도를 통일하고, 2) 안전성평가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3) 원자로 방호대책을 향상시키고, 4) 자연재해에 대한 방호대책을 향상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밖에도 많은 조치가 취해졌지만 이 이상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어서 여기까지만 정리했다.


기대


일일이 거론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고 전문적이어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여러 개선 움직임을 이 정도로 정리했지만, 이 책 12장에서는 국제원자력기구, 경제협력개발기구, 유럽연합, 그리고 주요 국가의 대응과 개선 내용을 수십 쪽에 걸쳐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것뿐 아니라 국제 현안으로 대두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일본산 식품의 안전, 일본 국토의 오염과 여행 안전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로서 6백여 쪽에 달하는 상세하고 전문적인 책을 쓰는 것도 어렵고 출판사로서 독자가 한정되어 채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책을 출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귀한 책을 대할 수 있도록 애쓴 저자와 출판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렇기는 해도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원자력 산업이라는 것이 워낙 분야가 넓고 깊은 지식을 요구하는 산업이어서 이 언저리에서 40년을 머물렀는데도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다. 그렇기는 해도 40년 동안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나조차도 열흘 넘게 매달려서 겨우 이 책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귀한 내용이고 후일에도 원전사고와 원전안전에 대한 교과서로 남을만한 책이기는 하다. 하지만 누군가 같은 내용을 일반교양서 수준으로 다시 풀어 쓸 수 있다면, 그래서 많은 이들이 원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어쩌다 보니 한때 청정에너지로 기대를 모았던 원전이 퇴출되어야 할 사회의 공적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르기까지 변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 EU 집행위가 발표한 녹색분류체계(Taxonomy) 초안에 원전을 포함했지만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는 배제되었다. 물론 EU의 결정은 초안에 지나지 않고 EU 내에서도 이견이 존재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에 따라 수정안이 나올 수도 있으니 단정 지을 일은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탈원전 결정과정을 돌이켜보면 기대를 걸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어떤 결정이 이루어지든 왜곡이나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실과 근거가 바탕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 과정에 이 책이 조그마한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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