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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18. 2022

완역 정본 택리지

최고의 국토지리서

이중환

번역 안대희 외

휴머니스트

2018년 10월 29일


<택리지>라는 책이 있는 것도 알고, 누가 지었고 어떤 내용을 다루었는지도 알지만 정작 그 책을 읽어본 일은 없다. 그런 책이 이것뿐인 것도 아니고, 읽었다고 한 책 중에도 원전이 아닌 요약본이나 발췌본인 것도 한두 권이 아니다.


며칠 전 <택리지>가 완역 정본으로 출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친 김에 그동안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지는 않은, 읽기는 했지만 원전을 읽지 않은 고전을 읽어보기로 했다. 언제든 어떤 책이든 서가에서 뽑아볼 수 있는 도서관이 곁에 있어 쉽게 마음먹을 수 있었다.


당대는 물론 이후 이백오십 년 넘게 필적할만한 책을 찾을 수 없다는 국토지리서인 <택리지>는 당쟁으로 몰락한 남인 명문가의 자제인 이중환이 실제로 조선 곳곳을 찾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지역별,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다. 당초 사대부가 거처할만한 곳을 찾는 지침서라는 뜻으로 제목을 <사대부가거처 士大夫可居處>라 붙였다가 친지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런저런 내용을 추가한 후 거주지 선택 지침서라는 뜻으로 <택리지 擇里志>로 고쳤다. 말하자면 독자를 사대부에 한정했다가 이후 일반 백성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전체적으로 사대부 위주로 되어있을 뿐 아니라 저자 스스로도 ‘복거론(卜居論) 인심편’에서 “이것은 비천한 백성을 두고 한 말일 뿐 사대부의 풍속은 그렇지 않다”며 백성을 비하하는 듯한 표현을 하고 있다. 개정한 내용이 이 정도라면 개정 전에는 백성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읽어가면서 알고 있던 것에서 뭔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저자는 몰락한 명문가의 자제이다 보니 관직으로 나갈 길이 아예 막혔고 생계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모양이다. 해제에서 대표 역자인 안대희 선생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표현 욕구, 비록 철저히 몰락했지만 사대부로서의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욕구가 저자로 하여금 지리경제에 대한 안목과 산수유람 경험을 되살려 이 책을 집필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대부들이 새로운 주거지를 찾는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서 생계의 방편을 삼으려 한 것도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당시 이런 사대부들의 수요로 인해 시중에서 이 책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했다고 한다. 그 인기가 생계의 수단으로 연결되었다고 하니 지금처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손에 손을 거치는 필사로 전달되었을 텐데, 어떤 방식으로 그 수요가 저자에게 경제적인 보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는지 매우 궁금하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200여 종의 이본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 완역 정본이 발간되기 전에는 여러 이본이 중구난방으로 나와 있어서 안대희 선생을 중심으로 한 9명의 한문학 연구자가 먼저 신뢰할만한 이본 23종을 추려 그를 바탕으로 정본을 복원한 후 번역을 마쳤다고 한다. 이 책 자체도 분량이 만만치 않은데 200여종에 이르는 이본 중 23종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을 비교 검토해 정본을 만드는 건 더욱 큰 노고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수고를 아까지 않는 학자들 덕분에 저자의 역작을 제대로 대할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은 서론, 지역별로 서술한 팔도론(八道論)과 주제별로 서술한 복거론(卜居論)으로 이루어진 본론, 그리고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거론에서는 조선 전역을 지리, 생리(生利-경제활동), 인심, 산수(경치)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팔도론(八道論)


이번에 발간된 <완역 정본 택리지>에서는 팔도론에서 각 지방에 대한 저자의 서술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순서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이 길고 평가가 호의적이다. 이와는 달리 저자는 팔도론 서론에서 각 지방을 북에서 남으로 오는 순서로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용도 그런 순서인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이 책의 순서가 원저의 순서인지, 아니면 저자가 언급한 대로 원저에서는 북에서 남으로 오는 순서로 서술된 것을 이번 발간 과정에서 저자의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배치한 것인지 궁금하다.


“평안도는 산출이 적어 근근이 생활할 정도이어서 살 곳이 못된다. 함경도는 사대부가 살려고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살 곳이 못된다. 황해도는 산출이 많아 부자가 많지만 사대부가 드물다. 그렇다고 거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강원도는 평가랄 것이 별로 없다.) 경상도는 선비가 많은 인재 창고이다. 경상좌도는 토지가 척박하고 곤궁하나 과거 급제한 이가 많고, 경상우도는 토지가 비옥하여 부유하나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 서울에서 멀어 사대부들이 쉽게 갈 수 없다. 전라도는 산출이 많아 부유하나 학문을 중시하지 않고 급제자도 별로 없다. 충청도는 서울과 가깝고 서울 명문가들이 자리 잡고 있어 최적의 거주지이다.”


복거론(卜居論)


저자는 복거론에서 터를 잡고 살 만한 땅을 고르는 조건은 지리가 최우선이고 생리가 다음이며, 이어서 인심, 산수라고 말한다. 그리고 네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리: 사람은 양기를 받아야 살아가기 때문에 햇볕이 좋아야 한다. 따라서 하늘이 적게 보이는 곳에서는 결단코 살 수 없다. 산골보다는 들이 좋다.”


“생리: 볍씨 한 말에 벼 60말이 나면 좋은 땅이고 40~50말이면 중간은 되고 30말보다 덜 나면 사람이 살기 어려운 나쁜 땅이다. 가장 기름진 땅으로는 전라도 남원과 구례, 경상도 진주와 성주를 꼽을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좋은 땅에서는 140말이 나고 대체로 100말 정도는 나며 나쁜 땅에서도 80말은 족히 거둔다.”


“인심: 평안도는 인심이 순박하고 후덕하기로 제일가고, 경상도는 풍속이 질박하고 진실하고, 함경도는 오랑캐 땅과 접해 있어 백성들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하고 막혀 있어 모질고 사나운 백성이 많고, 강원도는 산골이라 물정이 어두운 백성이 많고, 전라도는 오로지 교활함과 음험함을 숭상하여 그릇된 일에 쉽게 움직이며, 경기도는 도성 밖 들에 있는 고을이라 백성과 산물이 쇠약하고 피폐하며, 충청도는 오로지 권세와 이익만 좇는다. 그러나 이것은 비천한 백성을 두고 한 말일 뿐 사대부의 풍속은 그렇지 않다.”


사대부에 의한 사대부를 위한 책


세간에서는 <택리지>에서 저자가 당쟁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절망과 울분을 표현했다던가, 짧으면서도 핵심적으로 당쟁의 폐해를 비판했다던가, 조선 후기의 사상적 정치적 변동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이 책의 해제에서 당초 <사대부가거처 士大夫可居處>라는 제목을 <택리지 擇里志>로 고친 과정을 서술한 것을 보면 독자를 사대부에 한정했다가 이후 일반 백성으로까지 확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대부인 저자가 민초의 삶에 관심을 둔 것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중을 비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견해는 비록 몰락한 사대부이지만 저자는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대한 비판과 민초의 삶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고, 그것이 이 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시종일관 사람이 살만한 곳의 기준을 사대부의 거주 여부로 판단한다. 팔도론에서는 평안도는 산출이 적어 사대부가 없어서 그리고 함경도는 사대부가 살려 하지 않아서 살 곳이 못되고, 황해도는 살기가 넉넉하고 사대부가 드물게라도 있어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곳은 면했다고 평가한다. 반면에 충청도는 명문가들이 살고 있어 최적의 거주지라고 평가한다. 복거론에서는 각 지방의 인심을 평가하고 나서 “이것은 비천한 백성을 두고 한 말일 뿐 사대부의 풍속은 그렇지 않다.”고 말을 맺는다. 이것이 과연 지식인으로서 사회를 바라보며 가질 수 있는 생각일까? 민초를 생각하는 사람이 그들을 ‘비천한 백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론 사대부 사는 것은 인심이 고약하니 다른 곳에 살라고 권하기는 했지만, 나는 이것이 사대부를 비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류세력에게 배척당해 배배꼬인 속마음의 일단을 보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민초를 생각한다면 어찌 어느 특정한 지방을 들어 “오로지 교활함과 음험함을 숭상하여 그릇된 일에 쉽게 움직인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훗날 이규경이 “사람들이 이 책에 많이 현혹되어 폐단이 끝없다”고 걱정했겠는가. 물론 해제에서는 이와 같이 부정적이고 우려 섞인 시선이 없지는 않으나 후대의 독자까지 그의 설명과 판단을 공감하고 신뢰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 나는 그 말에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내 눈에는 이 책은 그저 사대부를 위한 사대부가 자신의 시각으로 쓴 책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지리서로서의 이 책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궁금한 점


저자는 팔도론 강원도 편에서 강원도가 흡곡, 통천, 고성, 간성, 양양, 강릉, 삼척, 울진, 평해 이렇게 9개 군으로 이루어졌다고 언급한다. 모두 태백산맥 동쪽에 동해와 연한 지역이다. 그러면서 원주와 춘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원주와 춘천은 9개 군 중 어느 군에 속했을까? 울진이 당초 강원도였다가 1960년대에 경상북도로 편입된 것은 알고 있었는데 평해까지 강원도였던 것은 알지 못했다.


저자는 강릉을 예맥의 도읍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예맥은 시기로나 위치로나 강릉과 연관시키기 어려운 것으로 알아왔다. 잠시 검색했지만 그럴만한 근거도 찾지 못했다.


저자는 전라도와 평안도는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평안도는 인심이 순박하고 후덕하기로 제일가는 곳이고 전라도는 오로지 교활함과 음험함을 숭상하여 그릇된 일에 쉽게 움직인다고 판단했을까? 혹시 근현대의 전라도 비하가 여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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