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05.10 (화)

by 박인식

서울을 떠나 있으면서 아쉬운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 중 가장 갈증이 났던 것이 다양한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찾을 수 없는 것도 그렇고 다양한 강좌에 참석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게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오늘 서촌 ‘문화공간 길담’에서 구정은 국제전문기자의 강의가 있었다. 요즘 가장 뜨거운 국제문제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루었는데, 참석자라야 채 스무 명도 되지 않았지만 열강과 진지한 질의응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질의응답은 뒤풀이에도 이어져 일곱 시에 강의로 시작한 모임이 열한 시가 되어서야 파했다. 오늘은 ‘대전환기의 세계와 한반도’라는 주제로 매달 열리는 연속강의의 첫 번째 시간이었다. 칠월까지 계속된다니 관심을 가지고 참석할 생각이다.


오늘 강의를 해준 구정은 기자는 중동관련 기사를 많이 써 알게 된 분으로, 작년 경향신문을 그만 두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국제전문기자답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상세하게 설명하던 말미에 “현장에서는 전쟁으로 수많은 생명이 죽어 가는데 이런 지정학적 분석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설명 하나하나가 다 의미 있었지만 국제관계보다 생명의 가치를 더 귀하게 여기는 그 말에 마음이 뭉클했다.


오래 전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로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을 때 ‘수 십 만이 목숨을 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수 십 만의 사건’이라고 설교한 목사님이 계셨다. 그때 느꼈던 감동을 이 강의를 들으며 다시 한 번 느꼈다.


사실 많은 이들이 평화를 외치지만 그들이 정말 전쟁의 참혹함을 이해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전쟁의 잔인함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의 잔인함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갖게 되는 평화에 대한 생각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다 보니 전쟁을 이데올로기로 접근하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피해’라는 한 단어로 퉁치고 마는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매사를 냉정한 시각으로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의 처지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생명의 가치를 잊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런 그로부터 “한쪽에서는 생명이 스러져 가는데 다른 한쪽에서 지정학적 분석에 매달려 있는 게 얼마나 허망한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으니 마음이 뭉클한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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