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생일. 혜인 어멈이 꽃바구니를 보냈다. 지난 번 내 생일에도 보내더니 아내 생일에도 보냈다. 사우디에서 지낼 때는 부모 생일인데도 선물 하나 보낼 수 없어 섭섭해 하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그렇게라도 축하할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 마음이 고맙기는 한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선물조차도 번거롭다. 선물 보내느라 신경 쓸 것을 생각하면 괜한 일을 한다 싶기도 하고. 올해 한 번 보낸 것으로 충분하니 앞으로는 보내지 말라고 했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 나만 은퇴하는 건 불공평하니 아내에게 함께 은퇴하자고 했다. 그래서 아침은 내가 준비하고 아내는 저녁만 준비하면 어떻겠냐고 하니 자기가 외출할 때 혼자 챙겨먹기만 하라더라. 그래도 생일에는 내가 준비할까 싶었지만 안 하던 짓 하는 게 쑥스러워 아침은 바게트에 커피 한 잔으로 넘겼다.
오후에 안산자락길을 걸었다. 얼마 전에 왔을 때만해도 미처 만개하지 못했던 아카시아 꽃이 이미 다 졌더라. 아내와 손잡고 쉬엄쉬엄 걸으며 지난 이야기도 나누며 그렇게 오후를 보냈다. 주부들은 자기가 만든 음식만 아니면 다 맛있단다. 그래서 소박한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엊저녁 친구 만나고 들어오니 막내 제수가 보냈다면서 아내가 생일 케이크를 들어보였다. 아침에는 리야드에서 이웃으로 지냈던 이에게서 커피 쿠폰이 오고, 점심때는 작은 제수가 케이크 쿠폰을 보내왔다. 모바일로 커피 쿠폰 보낸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받아본 건 처음이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내와 머리 맞대고 한참을 궁리해야 했다. 서울을 떠나있던 십 수 년 사이에 참 많이 달라졌다.
내가 선물 받는 건 이미 번거로워졌다. 그래도 아내가 그리고 아이들이 선물 받는 건 아직도 즐겁고 감사하다. 내가 받는 건 번거롭고 가족이 받는 건 즐겁고 감사하다니 영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뭐 어쩌겠냐, 사실이 그런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