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보문호 산책길. 셔츠 바람으로 걷기 딱 좋을 만큼 포근하다. 지나는데 박목월 선생 시비가 보인다. 아, 선생의 고향이 경주였지! 시비를 세운 이들 중에 박두진 선생이 보인다. 구상, 김춘수, 어효선... 이미 별이 된지 오래된 전설. 글씨가 눈에 익어 살펴보니 선생의 육필을 새겨놓았다. 어렸을 때 선생의 글씨가 그렇게 멋져 보여 닮고 싶었다. 어쩌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중년부부 하나가 함께 사진 찍으려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자청해 멋지게 하나 찍어주고. 걷다보니 산책로 끝에 넓은 호수를 배경 삼은 무대가 보인다. 수상공연장이란다. 여름밤에 보면 기가 막히겠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박목월 선생 전집을 사주셨다. 어려운 형편에 적지 않은 지출이었을 텐데. 자식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그렇게 표시하셨을 것이다. 그 덕에 선생 닮은 글씨를 얻었다. 선생의 성정도 닮았으면 좋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