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11.19 (토)

by 박인식

80년 연구소에 취직해 처음 출장간 곳이 월성 원전 현장이었다. 경주에서 버스를 타고 추령을 넘어 양남면 나아리까지 가는데 두세 시간은 족히 걸렸던 듯싶다. 지금은 삼십 분이면 가는 길을. 당연히 비포장이었고, 비가 내린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나아리는 장화 없이는 다닐 수 없는 곳이었다.


82년말 지금 회사로 옮기고 나서 첫 현장이 거제도 지세포였다. 거기서 두 해를 보냈다. 단신 부임하면 숙소에서 지내야했지만 굳이 집을 얻어 살았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지금도 박 대리로 기억한다. 어느 해 겨울엔가 먼지 날리듯 잠깐 눈이 보이다 만 것처럼 한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지내던 탓에 서울로 돌아와 안 입던 내복을 꺼내 입어야 했다.


조카들 따라 경주에서 놀다가 거제도로 왔다. 겨우겨우 휴가를 맞춰놨는데 숙소가 없어 나눠 지내야한다며 미안해했다. 데리고 가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그게 무슨 말이람. 게다가 두 곳 모두 내게는 사연도 많고 이후로도 수십 년 다니던 곳이니 오히려 반가웠다. 앞장서서 이곳저곳을 돌아보느라 아침에 경주를 떠나 지세포에 도착하니 사방이 캄캄하다.


밋밋하기 짝이 없는 감은사 삼층석탑을 보곤 뜨악해 하는 것 같더라만, 지나다니며 멀리서만 보다 어느 하루 날 잡아 찾았을 때 그 크기에 압도되었던 기억을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했다. 따져보니 천오백 년. 그러고 보면 인생 백 년 별 것 아니다.


정자리 고개에 이르는 바닷가는 마천루 같은 아파트가 빼곡하다. 햇빛도 들지 않고 앞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 온산공단 지날 때는 고생스럽던 기억이, 달맞이고개에서는 바쁜 출장길에 잠시 숨 돌리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동네 친구들과 밤낚시하던 지세포만은 호텔이며 리조트에 펜션으로 둘러싸였고.


아침에 파도소리 들으며 산책로 끝에 이르니 몽돌해변이 나온다. 사십 년을 다녔어도 거기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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