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11.22 (화)

by 박인식

동해 가난한 어부의 자식으로 자라나신 아버지는 가난에서 벗어나겠다고 일찍 상경해 고립무원의 삶을 사셨다. 아버지 위로 누님 세 분 아래로 남동생 한 분, 이렇게 다섯 남매에게서 모두 스물넷이 태어났다. 그들이 하나둘 상경하기까지 얼굴을 본 것은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도 바쁘다. 넉넉하지 못한 삶에 열두 시간 넘는 길을 나서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스물넷 중에 나는 여덟 번째. 내 위로 일곱분이 계셨다. 그 일곱 중 넷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고 어제 또 한 분이 떠나 이제 둘이 남았다. 나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따져 보니 그렇지도 않다. 그래도 내 아래로 모두 생존해 있는 건 고마운 일이고.


귀국하고 나서 고향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누님이 암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형은 떠난지 이미 오래 되었다 하고. 찾아 가겠다니 동생들이 극구 말렸다. 피차에 고통스러운 일이니 전화나 하라고 했다. 전화하는데 “야야, 내가 마이 아파” 이랬다. 아침에 문상하겠다고 집을 나서는데 그 말이 귀에 쟁쟁하다. 그래도 다녀왔어야 하는 건데.


큰고모님은 나를 당신 동생 보듯 하셨다. 친정 장조카라고 끔찍이 여기신 것이다. 그 맏따님인 누님도 그랬다. 아, 갔어야 했는데. 아픈데 누가 찾아오면 짐스러워 할 거라고 이유를 붙이기는 했지만 마음이 거기까지였던 것이지.


학생일 때 본 조카들이 환갑이 내일모래란다. 같이 늙어가는 것이지. 몇 십 년만에 전화 하는데 상중인데도 목소리에서 반가움이 묻어난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산 사람은 반갑게 만날 일 아닌가. 그러고 보니 우리 어머니 복 받으셨다. 아직도 칠십을 바라보는 자식 걱정으로 날을 보내고 계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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