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신년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내친 김에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섯 시쯤 집을 나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아내를 데려다 주고 출근하면 일곱 시쯤 되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다시 기도를 하고 일을 시작했다.
기도하면서도 늘 불안했다. 워낙 부서 상황이 좋지 않아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는데 그런 절박함이 나 뿐이 아니다 보니 편법과 불법이 난무했다. 그저 꿩 잡는 게 매라고, 수주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불법을 이뤄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여느 날처럼 교회에 앉았는데 눈물이 터졌다. 오랫동안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자신이 불쌍했고, 애써 불법인 것을 외면하며 이루기를 구하는 모습이 견디기 어려워서였다. 그날 결국 일이 틀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마음은 더 이상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낯선 남의 땅 침상에서 소송의 압박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아도 기도가 되지 않았다. 앉아서 눈을 감아도 엎드려 눈을 감아도 기도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비몽사몽 하던 새벽 미명에 알 수 없는 손길이 가슴을 쓰다듬었다. 일순간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아내가 아침에 내 모습이 놀랍도록 평안해 보였다고 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그것도 벌써 옛날 일이 되었다. 일을 놓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편안하게 백수를 즐기고 살았다. 당연히 기도를 잊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내게 기도는 주문에 지나지 않았구나. 그런데도 외면하지 않으셨구나.
요즘 성서비평에 빠져 지낸다. 바쁘기도 하고 애써 외면했던 성경의 불편한 모순을 이제는 들여다 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신비의 영역에 있던 성경이 일상의 영역으로 조금씩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읽기를 계속하고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이가 그것 때문에 신앙을 떠날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십 여 년 쌓아온 사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통 중에 있는 나를 찾아와 위로해주시던 그분과 함께 쌓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