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Revi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Jan 23. 2023

<소설>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1판 1973년 10월 25일

2판 2015년  2월 10일


십 대 아이들이 표류하다 어느 섬에 떨어진다. 아이들이 십 대라는 것과 그 중 몇몇 아이들의 이름이 나올 뿐, 그 아이들이 몇 명인지도 정확하지 않고 어쩌다 거기까지 왔는지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도 않다.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뭔가 설명을 해놓고는 있다. 사실 그걸 몰라도 이 소설을 읽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십 대 아이들이 (모두 십 대인지도 불분명하다) 무인도에서 구조될 때까지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이 모두 아이들이지만 작가가 아이들을 겨냥해 쓴 소설이라기보다는 아이들에게 빗대어 사회 풍조를 비웃는 풍자소설이나 상징소설이라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거기 탔던 열 명쯤 되는 아이들이 섬에 남는다. 영국을 탈출한 비행기였고, 추락하기 전에 영국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전쟁을 피해 아이들을 소개시킨 것으로 보인다. 너무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이다 보니 이걸 끝까지 일어야 할까 잠시 망설였다. 추락한 비행기에서 탈출했다면서 다친 아이도 없고, 어른도 없고, 여자아이도 없다. 어차피 상징소설이라면 그런 걸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섬 안을 헤매던 랄프와 피기가 만나고, 랄프가 가지고 있던 소라껍데기를 불자 숲에서 아이들이 나온다. 잭이 이끌고 온 아이들과 사이먼이 거기 합류한다. 아이들이 투표로 랄프를 대장으로 뽑는다. 그리고 소라껍데기를 집어 드는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기로 합의한다. 랄프는 무엇보다 구조를 받기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이들 중 몇 명에게 산에서 봉화를 피우는 일을 맡긴다. 잭에게는 봉화를 피우는 아이들을 관리하고 짐승을 사냥하는 일을 맡기고 자신은 오두막 짓는 일을 맡는다. 잭은 멧돼지 잡는 일에 열중하다가 그만 봉화를 꺼뜨린다. 공교롭게 그때 배가 지나가지만 봉화를 꺼뜨린 탓에 아이들의 구조신호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이때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책임을 묻고 책임을 추궁 당하는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그러면서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이 도전을 받는다. 멧돼지를 잡아와 아이들이 배불리 먹게 만든 잭으로서는 선출되었다는 이유로 매사를 지시하려 드는 랄프가 못마땅하다.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아닌 소라껍데기를 집어 들어야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규칙도 우습기 짝이 없다. 그래도 합의로 선출된 권력을 함부로 무시하지는 못한다.


이후에도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다.


몇 가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우선 선출된 권력, 합의로 만든 규칙이 강제력을 발휘할 수도 없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없을 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익을 앞세운 집단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가 하는 것이다. 멧돼지를 잡아 그것을 아이들에게 나눠준 잭은 단지 선출되었다는 때까지 힘을 발휘한 지도자 랄프와, 단지 합의되었다는 이유로 그 소라껍데기를 들어야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는 규칙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그런데 랄프는 물론 랄프를 대장으로 뽑은 아이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아니, 달지 못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소설은 1954년에 발표되었다. 출간 당시에는 3천부도 안 팔렸던 작품이었는데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60년대 초반에 수많은 학생들이 읽었고, 작가인 골딩이 1983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로 이 소설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제야 여러 나라에서 번역본이 출판되었다고 한다. 내가 읽은 번역본 초판이 1973년에 출간되었으니, 편집자가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전하려는 상징을 이해하기는커녕 줄거리조차 쫓아가기 버거웠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건 작가였지 이 소설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작가의 가장 대표작이 이 소설이니 이 작품이 그 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소설의 줄거리조차 쫓아가지 못한 내가 문제라는 말인가? 혹시 번역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가 모르겠다. 번역을 해보니 글쓴이가 말하려는 내용을 다 이해하고 번역하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매순간 절감한다.


사실 이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지금 번역하고 있는 책 때문이었다. 그 중 한 장의 제목이 <Lord of the Flies>였다. 들어본 구절이어서 찾으니 소설 제목이었더라. 의미를 살리기 위해 소설을 읽었지만 이 소설에서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책에서는 ‘잔인한 군주의 심복으로, 군주의 명령이라면 어떤 악행도 망설이지 않는 행동대장’을 묘사하는 말로 쓰였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그 명칭이 나오는 부분을 몇 번 읽었어도 그게 뭘 뜻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지금 번역하고 있는 책을 쓴 작가가 무슨 의도로 그 제목을 차용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훗날 이 내용을 참고할 일이 생기면 쉽게 기억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리뷰를 쓰고 있다. 그럴 일이 뭐 있을까마는.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영화 <헤어질 결심>을 다 보고나서도 줄거리를 이해하지 못해 남이 써놓은 줄거리를 읽고 겨우 이해하게 되었던 일이 생각났다. 혹시 인지능력이 떨어진 것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금수회의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