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군인들이 여기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독립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 독립국가일 것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38시간 만에 젤렌스키가 국민에게 내놓은 일성은 32초에 불과했다. 전쟁이 일어난 이후 그가 내놓은 수많은 연설 중 가장 중요한 연설로 꼽히는 이 연설은 가장 짧은 연설이기도 하다. 짧아도 중요한 연설이요 명연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가 러시아 침공 초기에 많은 서방 언론이 짐작한 대로 우크라이나를 탈출했더라면 그것이 명연설이 될 수도 없었고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코미디언이 어쩌다 대통령이 되었다는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은퇴하기까지 사회인으로 살아오면서 청중을 대상으로 발언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마다 짧고 간결하게 의도를 전달하려고 했고 그것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다. 같은 값이면 짧고 간결한 것이 효과적이고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아무리 인상적이고 효과적인 발언이었다 해도 사실이 바탕이 되고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것은 그저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진부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발언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그것이 진실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제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그의 국방색 티셔츠 복장과 그것으로 상징되는 ‘국민과 함께’라는 그의 정체성과 진정성, 그것이 젤렌스키 연설이 그토록 높이 평가받는 이유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는 해도 그의 연설이 뛰어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의 연설에는 도입부라는 것이 없다. 언제나 시작부터 핵심을 파고든다. 군더더기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니 청중이 한눈 팔 겨를이 없다. 그것은 청중의 관심을 끌지 않고서는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코미디언의 생존전략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발언할 때도 그렇고 글을 쓸 때도 늘 첫 문장이 가장 어렵다. 그의 연설을 읽는 내내 그것이 가장 부러웠다.
그는 연설할 때 청중을 철저하게 고려한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자기 국민들을 향해 한 연설 못지않게 세계 각국의 정부나 국민을 대상으로 연설한 것이 많은데, 그때마다 그 청중들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나 관심사를 이해하고 철저하게 청중의 눈높이와 언어로 연설한다. 영국 의회에서 연설할 때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대사인 “죽느냐 사느냐”를 인용하며 “우리는 ‘살아서’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선언한다. 독일 의회에서 연설할 때는 ‘베를린 공수’를 거론하며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미사일과 폭격으로 베를린과 같은 공수가 불가능하다”면서 독일의 지원을 요청한다. 미국 의회에서 연설할 때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2001년 9.11 테러를 언급하면서 미국인들이 우크라이나가 당한 고통을 자기들의 고통으로 여기도록 만든다. 그는 비록 의회에서 연설하지만 그의 연설은 언제나 눈앞에서 연설을 듣고 있는 정치가들을 넘어서 그 정치인들을 선출하는 그 나라 국민들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정부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지원을 이끌어 내곤 한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결코 막연히 도와달라는 내용에 그치지 않는다. 언제나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해 즉각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어떻게 도와야할지 우왕좌왕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 도움의 효율을 극대화한다. “러시아인의 비자를 취소하고, 러시아를 국제금융거래에서 퇴출시키고, 러시아에 석유 금수조치를 취하고, 러시아 항공기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달라고 요청한다. 아울러 “평범한 시민들이 자기가 사는 도시 광장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촉구하고, 각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대사관과 무엇을 도울지 협의하고, 전투 경험이 있는 사람은 우크라이나 방어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자기들이 겪는 고통을 과장 없이 간결하고 건조하게 전달한다. 그는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지 14일째 되는 날 화상으로 영국 의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연설을 한다. 이날 그는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일어난 피해에서 시작해 연설 전날인 열 사흘째 날까지 일어난 피해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그들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겪는 고통과, 그 침공이 얼마나 무모하고 비인도적인가 하는 것을 더 이상 짧고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을 열거하는 것만으로 상황을 알리고 부당함을 알리고 고통을 알린 것이다. 소설가 김훈이 형용사와 부사를 극히 절제하면서도 상황과 당위성과 감정을 담아낸 것을 보고 늘 감탄했는데, 그의 연설도 그에 못지않은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 연설을 필두로 해서 이후 6개월 동안 전 세계를 상대로 100번 넘는 연설을 한다.
그는 연설을 통해 단지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부당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를 끝까지 찾아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우크라이나 특별사법기구 도입을 승인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했던 자들이 저지른 범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수사하겠다고 천명한다. 그 기구를 당장 작동시켜 그들의 책임을 묻고 처벌하겠다는 각오를 밝힌다. 그럼으로써 이전에 여러 대륙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전쟁범죄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르는 전쟁범죄가 인류 역사에 마지막 전쟁범죄가 되도록 만들자고 말한다. 이 연설은 자국 국민들을 향한 연설이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전쟁범죄가 언제든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환기시켜 다른 나라들의 동참을 촉구한 것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면서 러시아가 침공의 이유로 내세우는 우크라이나의 친나치 성향 때문에 처음에 잠시 혼란스러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정부를 나치 정부라고 압박하는 러시아의 주장에 맞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 그 주장을 반박한다. 러시아의 주장을 반박할만한 증거와 정황이 수없이 많았을 것이니 얼마든 그것을 세세하게 반박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대신 자신의 가족사를 언급해 청중들이 ‘직관적’으로 러시아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사형제의 이야기입니다. 사형제 중 세 명은 독일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부모, 아내, 아이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친척과 함께 살해당했습니다. 막내만은 살아남았습니다. 학살이 일어나는 동안 전선에서 싸우느라 고향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선에 남아 싸웠고, 나치즘을 무너뜨린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그는 4년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년 뒤 그는 아들을 낳습니다. 그리고 31년이 지나 그의 손자가 태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40년이 흘러 그 손자는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 됩니다.”
이 책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행한 수많은 연설 중에 자신이 직접 고르고 서문까지 쓴 연설문집이다. 이 책에는 젤렌스키 본인의 서문에 이어 <이코노미스트> 모스크바 지사장이었던 아르카디 오스트로프스키의 서문이 실려 있고 말미에 이 책을 번역한 박상현의 역자 후기가 실려 있다.
연설문 자체도 뛰어나지만 사실 일반인으로서 연설문의 진면목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스트로프스키의 서문과 박상현의 역자 후기는 그런 일반인이 쉽게 젤렌스키 연설의 진면목을 깨닫도록 만드는 좋은 나침반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연설문을 읽기에 앞서 서문과 역자 후기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박상현은 역자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젤렌스키 연설의 특징을 짚어내고 있다.
“그는 탈출을 제안한 서방국가들에게 ‘내게 필요한 것은 탄약이지 탈 것이 아닙니다’라며 결사항전의 자세가 무엇인지 보여줬고 이 말은 온라인에서 바이럴을 일으켰다. ‘나는 여기에 남겠습니다. 탄약을 지원해 주십시오’라고 했어도 의미는 전달되었겠지만, 개인의 신변 안전과 (항전을 위한) 탄약을 대비하는 ‘탈 것이 아니라 탄약’이라는 표현이 주는 강렬한 호소력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종종 전혀 다른 두 가지를 병치해서 그 중 하나를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조용해야 할 곳은 크렘린이 아니라 돈바스’라던가 ‘가스 없는 삶이냐 너희 없는 삶이냐. 너희 없이 살겠다’라는 수사법은 우크라이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동시에 듣는 사람에게 가치판단을 유도한다.”
“젤렌스키는 연설할 때마다 언론사 기자가 기사의 제목이나 요약으로 뽑기에 좋은, 소셜미디어에서 인용하기 좋은 문장을 꼭 넣는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과거에는 우리는 그것을 평화라고 했지만 이제 우리는 승리라고 말합니다.’ ‘키이우에 폭탄이 떨어지면 유럽에 폭탄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자와 일반인 청중의 귀에 핵심 구절이라고 분명하게 인식되는 한 줄의 존재는 그의 메시지가 왜곡 없이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게 만들어줬다.”
오스트로프스키는 서문에서 젤렌스키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인터뷰어의 질문을 듣는 법이 별로 없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리 준비한 메시지를 읊는 일이 훨씬 많다. 젤렌스키는 달랐다. 그는 질문에 귀를 기울였고, 생각을 했고, 3개 국어로 진행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젤렌스키가 군대를 지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명백해 보였다. 그는 전쟁은 장군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아는 현명한 사람이다. 각 지역의 책임자를 일일이 통제하려 들지도 않았다. 현장에서 실무를 하는 이들이 더 잘 알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모두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고 있고, 젤렌스키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은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소통하고, 외국 정부와 기업체들을 설득해 러시아와 맞설 무기를 공급받는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일하는 국가이며 젤렌스키는 그런 자원봉사자들의 리더인 셈이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정치 현안을 생각하면 왜 우리에겐 이런 지도자가 없는지 한탄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지도자와 함께 전쟁을 감당해나가는 것이 지도자가 시원찮더라도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보다 더 나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젤렌스키의 지도력이 지금처럼 빛을 발할 일은 없었을 것이고, 지금도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어느 나라에는 코미디언이 대통령이 되었다더라” 하는 가십의 대상으로 여겼을 것이다. 젤렌스키는 이런 상황에 대한 그의 심경을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를 바꿀 수만 있다면 더는 세계 언론에서 제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도, 제 말이 전달되지 않다고 좋겠습니다.”
그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도 당연히 ‘빛나는 지도자가 추앙을 받는 우크라이나’보다는 ‘시원치 않은 지도자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나가는 대한민국’을 택했을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수도로 진격하는 러시아 군인들의 배낭에는 시가행진 때 입을 정복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 수도의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거리를 행진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어디 러시아뿐이었겠는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그런 모든 부정적인 시선을 부숴놓았고, 그 중심에 젤린스키가 있었다.
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능력이 어떤지 알지 못하고, 세계정세가 어떻게 돌아갈지 짐작도 못한다. 그러니 이 전쟁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가 사라질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