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도 그렇고 친구의 자식이 제 몫을 하고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좋은 계절에 아름다운 곳에서 며칠을 함께 보낸 친구는 아들이 중증외상센터를 맡아 일하고 있다. 힘들기로 소문난 역할이니 아비로서 편안히 바라볼 수만은 없겠지만, 아비의 친구로서는 그저 자랑스러울 뿐이다. 혜인 아범이 자기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을 나 역시 어디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을까마는, 아비의 친구로서 그는 혜인 아범에 대한 기대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혜인 아범이 연주 때문에 다른 도시에 가서 있다가 어제 밤늦게 돌아왔다. 고단했을 텐데 고맙게도 친구에게 극장을 안내하겠다며 자청하고 나섰다. 친구 내외는 아름답기로 유럽 어느 오페라극장에도 빠지지 않는 비스바덴 극장을 돌아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짐작컨대 그곳에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친구 아들의 안내를 받아 돌아보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을 것이다.
혜인 아범이 내일 저녁에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출연한다. 이틀만 늦게 왔더라면 함께 오페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여기까지 와서 공연을 보지 못하고 가서 아쉽게 되었다. 공연시간이 네 시간이나 되니 저녁 시간을 온전히 거기에 쏟아야 하지만, 그라면 그것도 기꺼이 감수했을 것이다.
극장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혜인 아범과 쾰른극장에서부터 동료로 일하는 소프라노를 만났다. 부친이 부산대 교수이시라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생각나 이야기해주니 친구가 반색을 한다. 게다가 그 소프라노 역시 부산대 출신이라니 더욱. 35년을 부산대에서 근무했어도 다른 단과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들은 잘 모른단다. 수유리 가오리 토박이인줄만 알았던 친구가 뜻밖에 부산에서 태어났고 부산에 가면 부산 사투리를 쓴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
칠순 여행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반갑고 즐거웠다. 앞으로 보름 동안 바그너의 고장인 밤베르크, 뉘른베르크, 바이로이트를 들러 비엔나까지 둘러올 계획이란다. 쉬엄쉬엄 서두르지 말고 아주머니랑 재미있게 잘 다녀오라며 떠나보냈다. 조만간 서울에서 뒤풀이하기로 하고. 밤베르크에 잘 도착해서 우리가 선물한 와인 한 잔 한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유쾌하고 활기차게 잘 다녀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