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 아범이 2006년 베를린으로 유학 떠나고 나서부터 코로나 때문에 두 해 거른 것을 빼고는 매해 독일을 다녀왔다. 처음 베를린에 갔을 때 버스 지하철 환승시스템과 정거장마다 버스 도착시간이 실시간으로 뜨는 것이 몹시 부러웠다. 그 후로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서울에도 환승과 도착안내 서비스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이제 서울의 대중교통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요금제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는 정기권이라는 게 거의 없다. 찾아보면 아주 없지는 않겠으나. 외국 어지간한 도시에 가면 일일권이나 일주일권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한다. 사우디 살 때 한국 다녀온 교민들 보면 늘 그게 불만이었다. 외국인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고.
독일은 대중교통이 아주 잘 정비되어 있다. 도시 외곽으로 가면 운행 간격이 너무 뜨고 현금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불편함은 있지만. 지하철 전철 티켓은 발권기에서 현금과 신용카드로 살 수 있는데 버스는 현금은 아예 안 빋고 외국 신용카드도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금제가 다양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할인 프로그램이 많아 요금 자체는 비싸지만 실질적인 부담은 우리와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적다.
혜인 아범은 차를 가지고 다녀서 대중교통을 거의 이용하지 않지만 필요하면 공무원증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혜인 아범이 일하는 곳이 주립극장이어서 극장에 소속된 사람들은 주 공무원 신분이고, 공무원은 대중교통 요금을 면제받는다. 대학생은 등록하고 받은 학생증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등록할 때 교통비를 별도로 내지는 않는다. 여기까지는 독일 연방 모든 주가 같다. 혜인네가 사는 헤센 주와 혜인이 학교가 있는 라인마인팔츠 주의 중고등학생은 하루 1유로씩 쳐서 1년에 365유로를 내고 교통카드를 받는다. 유치원생까지는 요금을 내지 않고, 초등학생은 어떻게 내는지 잘 모르겠다.
할인 프로그램은 그뿐 아니다. 작년에 코로나 이후 경기 진작을 위해 연방에서 9유로 티켓을 발매한 일이 있었다. 한 달에 9유로를 내고 독일 모든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당국의 부담이 컸던지 석 달만 시행하고 다시 연장은 하지 않았다. 올해부터는 그것이 49유로가 되었다. 일일권도 있다. 한 구간일 경우 편도요금은 3.3유로, 일일권은 왕복요금인 6.6유로이다.
다른 티켓에 대중교통 이용권이 포함되기도 한다. 작년에 분데스리가 관람하러 갔을 때 입장권에 마인츠 지역 이용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5월 비스바덴 극장 오페라축제 티켓에는 비스바덴 지역 이용권이, 오늘 프랑크푸르트에서 카를스루에 오는 열차표에는 프랑크푸르트와 카를스루에 지역 이용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티켓을 살 때 옵션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무상으로 추가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대중교통을 철저하게 공영제로 운영하지 않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서울 마을버스 회사들이 자기들을 환승시스템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적자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긴 내 주먹구구식 계산으로도 과연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을까 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기업이나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루 빨리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