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3.06.19 (월)

by 박인식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동해라야 바다답다. 아름답기로 치자면 다도해도 손꼽을 만 하나, 그래도 거기를 보고 와서 바다를 보았다고는 말 못하겠다. 거제도에서 두 해를 보내면서도 섬이라고도 바다라고도 느끼지 못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그곳 부두에서는 부두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니 죽변항의 비릿한 냄새가 밀려온다. 그 냄새 때문에 울진에 올 때마다 늘 같은 곳에서 잔다. 어제는 구름 한 점 없는데도 하늘이 뿌옇더니 오늘은 구름이 덮였는데도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다. 습해서 하늘이 뿌옇던 게 아니냐고 하더라만, 습해서 하늘이 뿌옇다는 말은 듣느니 처음이다.


아이 백일 무렵에 울진 부구리에서 반 년쯤 살았다. 당시 연구소에서 일할 때였는데, 현장에서 잠시 지내야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니께서 언제 세 식구가 살아보겠냐며 아내더러 따라 내려가라고 하셨다. 어머니 말씀대로 세 식구가 살게 된 것은 막내동생이 분가한 십수 년 뒤의 일이었다.


울진 원전 일을 마치고 그해 말에 지금 회사로 옮겼다. 때마침 회사에서 원전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 후로 중동 현지법인으로 나갈 때까지 이십 년 넘게 울진을 드나들었다. 서너 해에 한 번씩은 일이 있었으니 햇수로도 횟수로도 울진과는 인연이 깊다.


현지법인에서 사우디 원전사업에 참여하려고 공을 들이고 있던 도중에 탈원전 선언이 나왔다. 당시 당신네는 싫다는 원전을 왜 우리에게 팔려고 안달이냐는 힐난에 난감하기도 하고 부아가 나기도 했다. 평생 애쓴 일이 공공의 적으로 지탄받는 걸 지켜보는 일도 견디기 어려웠다.


작년에 중단되었던 원전사업이 재개되면서 다시 울진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보다 훨씬 실력 있는 후배들 뒷전에서 구경이나 하는 처지지만, 그래도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사십 년 원전사업을 해왔다고 해서 원전만이 해법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합리적 근거보다는 정치적이고 감정적인 생각으로 재단 당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지.


352519172_6266131453422950_8294390408701785328_n.jpg
353411379_6266131853422910_5180122582361462664_n.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3.06.17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