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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20.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12)

음악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음악 감상실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아내를 만나기 전, 그리고 아내와 사귈 때쯤 명동 필하모니와 이대 앞 파리 다방이 음악 감상실의 대표처럼 여겨졌다.


필하모니는 전문 음악 감상실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앙우체국에서 세종호텔 뒤편으로 이어지는 길 중간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입장료를 내고 음료를 하나 받아들고 들어가면 극장처럼 의자가 전면을 향해 놓여 있었다. 극장과는 달리 의자 등받이가 높아서 다른 사람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고. 가끔 일어서서 지휘하는 별난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깨졌던 경우는 없었다. 전면 양쪽에 커다란 스피커가 있었고 음향기기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음향기기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을 그렇게 자주 다녔어도 그곳에 있었던 음향기기가 무엇이고 스피커가 무엇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생각해 보니 한쪽에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휴게실도 있었다.


이대 정문 왼쪽 이층에 파리 다방이 있었다. 나는 졸업하기 전이었고 아내는 함께 통근열차를 타고 은행에 다닐 때여서 함께 이대 앞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기차가 신촌역을 지나갔거든. 그곳은 음악 감상실인 필하모니와는 달리 그야말로 음악다방이었다. 차를 주문해 마시고 음악을 감상하는. 다만 음악은 다방에서 선곡하고, DJ 멘트를 연주곡목과 연주자를 적은 자그마한 칠판이 대신하고, 다른 사람이 방해되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이야기 하는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곳에서도 격정적인 곡이 나오면 여지없이 이곳저곳에서 지휘자가 출몰했다.


음악 감상실이 클래식을 듣는 곳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쉘부르는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를 그야말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기억이 분명치는 않은데, 쉘부르가 명동에 있다가 종각 앞으로 옮겼다가 다시 명동으로 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쉘부르가 음악 감상실, 아니 연주장 형태로 운영된 곳은 종각 쉘부르였다. 그곳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오란C라는 음료를 한 잔씩 줬다. 아마 오란C와 무슨 제휴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가족오락관 MC를 맡았던 허참이 그곳에서 일하다 발탁되었는데, 노래도 노래지만 허참과 가수들의 입담도 명물이었다. 그때 가수들이 장난처럼 오란C CM송을 부르곤 했다. 거기서는 노래만 잘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입담 좋기로 말하자면 쉐그린이라는 남성 듀엣이 단연 으뜸이었다. 권태수도 그에 못지않았고.


그곳도 필하모니처럼 좌석이 모두 무대를 향해 있었고 등받이가 비교적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식이나 술도 팔지 않고 오직 입장료 수입만으로 운영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생각해보니 그것으로 어떻게 수지타산을 맞췄을까 싶다. 아마 출연료는 거의 없다시피 했을 것이다. 이후에 쉘부르가 명동으로 옮겨 극장식 좌석에서 테이블식 좌석으로 바뀌고 한쪽에 무대를 꾸렸다. 그 이후의 기억이 그다지 없는 걸 보면 취업하고 결혼하면서 멀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가수로 나와 노래하다가 MC로 역할을 바꾸었던 주병진을 본 것이 그곳에서 마지막 기억이지 싶다.


음악감상실 필하모니 신청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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