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3.08.01 (화)

by 박인식

하나 있는 아들에게 그다지 살가운 아비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손녀를 얻고 나서는 그 일을 까맣게 잊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내가 대신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하튼 자식과 자식의 자식은 비교 자체가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우디로 옮기고 나서 자식이 독일에서 가정을 이루었고, 그곳에서 지금까지 산다. 아이들은 당연히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는 사우디 할아버지 할머니이고 외가는 한국 할아버지 할머니이다. 불과 네댓 시간이면 가는 곳이니 오가기는 쉬웠지만 우리 땅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보지를 못했다. 큰 아이가 유치원 들어갈 무렵인가 서울에 휴가 온 시간이 딱 하루 겹쳐서 몇 시간 경복궁을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서울에 돌아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이 바로 아이들 손잡고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성찬 나눌 때 함께 나아가 목사님께서 아이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해주시는 것을 보는 것도 오매불망 기다리는 일이었다. 매주 성가대석에 앉아서 목사님께서 부모 손잡고 나온 아이들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해주시는 것을 볼 때마다 그것만큼 부러운 일이 없었거든.


드디어 그날이 와서 그것도 아버지 기일에 아이들 앞세우고 산소를 찾았다. 아우들이 모두들 바쁘게 살고 있으니 산소에 가는 것이야 형편껏 알아서 가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도 혜인이 혜원이 앞세우고 갈 때는 함께 하고 싶었다. 다행히 그런 내 마음을 헤아렸는지 아우들도 흔쾌히 날짜를 맞췄다.


오늘 하필이면 KBS 방송 날짜가 잡혀서 아이 손잡고 시내를 활보하는 건 하루 미뤄야 하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큰애한테 함께 가겠느냐고 물으니 반색을 한다. 방송국에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라도 혹시 볼 수 있을까 하는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든 오늘 그렇게 좋아한다는 이들이 오픈 스튜디오에서 방송하는 것을 지켜보고 신이 났다. 난 누가 누군지 구별도 못하겠구만, 그게 뭔 대수겠는가. 함께 방송한 기자께서 앞장서 아이에게 보도본부도 설명해주고 9시 뉴스 스튜디오에 데려가 앵커 자리에 앉아볼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홍사훈 기자, 복 많이 받으시라.


보름 남짓 아이들과 같이 있을 것인데 그 시작 단추를 아주 훌륭하게 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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