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3.08.03 (목)

by 박인식

내게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1.4후퇴 때 잠시 아랫마을에 피해 있으라는 부모님 말씀을 따랐다가 피난민 대열에 휩쓸려 혼자 남하하셨고, 아버지는 가난을 피해 일찍 고향을 떠나셨다. 그렇게 의지할 곳 없이 만난 두 분이 살아가기엔 서울이 너무 팍팍한 곳이었다. 고향에 할머니가 계시기는 했지만 가난한 서울 살림에 삼척까지 내려가는 일은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할머니를 뵌 건 두 번인가 세 번인가 그랬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살갑게 여기는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나이 많은 노인네가 뭐 그리 좋을까 싶었던 것이지.


자식이 자식을 낳고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우리에게 손녀들은 끔찍한 존재였고 아이들도 우리를 잘 따랐다. 그제야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살가웠던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봄에 아이들 집에 가서 두 달 가까이 함께 지냈다. 매년 아이들을 만나기는 했어도 그저 늘 반가운 손님이었지 가족으로서 함께 산 건 처음이었다. 매일 학교 보내고 유치원 데려다 주는 게 일과였고 기쁨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외출도 여행도 못한 아들 내외 등 떠밀어 내보내도 아이들은 우리와 잘만 지냈다. 나는 코를 골아서 아이들 눈 밖에 났지만 아내는 아이들이 서로 자겠다고 했다. 작은애는 밤이고 낮이고 아내에게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모처럼 서울에 왔으니 아들 내외가 볼 일이 한두 가지였을까. 그래서 아이들 걱정은 말고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일 보라고 했다. 작은애는 엊그제 돌아다닌 게 힘들었는지 어제 큰애가 고모네 집에 간다는데 자기는 힘들어서 가기 싫단다. 그래서 큰애는 할머니 따라 고모네 집으로 가고 작은애는 나와 집에서 뒹굴 거렸다. 혼자서도 잘 놀아서 밥 챙겨 먹이고 간식 챙겨준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어제는 큰애는 제 고모네 집에서 아들 내외는 아이들 외가에서 자고 작은애만 우리와 잤다. 제 할머니 곁에 붙어서 자고 있는 걸 보는데 괜히 코끝이 찡했다.


작은애가 오늘은 자기도 고모네 집에 가야한다고 해서 아침부터 아내가 데리고 나섰다. 모처럼 운동도 하고 책상에 앉아 밀린 일 몇 가지를 처리하고 있다. 도서관에 반납해야할 책도 마저 읽고. 조금 있으면 아이들도 오고 아들 내외도 오겠지.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하다. 뭘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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