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란
교유서가
2023년 9월 11일
참 좋은 세상이다. 누군가 링크해놓은 신간 소설 이야기를 읽고, 그 소설가의 글을 찾아서 읽고, 책을 주문하고, 받아서 읽기를 마치고 이 글을 쓰기까지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에 소설가의 친구가 되어 그가 출연했던 방송도 듣고 피드에 올라오는 벌써 글을 몇 개나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룹사운드에 꽂혀 평생 그들의 팬으로 살아온 이가 소설가가 되어 첫 작품으로 그들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팀이 해체된 지 38년 만에 재결합 공연을 한 1주년 기념일에 맞춰 이 소설을 출간한다. 그리고 그 팀의 리더를 만나 그가 진행하는 방송에 출연해 성덕을 이룬다.
나는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그 호기심 덕분에 이 나이 되도록 활기차게 살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처럼 한 우물을 파보지는 못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의 흔적을 따라다닌 일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봐야 십 년을 넘긴 일이 없다. 그런데 작가와 그 친구들은 사십 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그 기억에 힘입어 그동안 있었던 우여곡절을 모두 뒤로 하고 사십 년 만에 재결합 공연장에서 다시 하나가 되었다.
이 소설은 작가와 세 친구, 그리고 그 주변인들이 <송골매>라는 기억 하나로 연결되어 재결합 공연을 향해 질주하는 100일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래서 제목도 D-100으로 시작해 D-day로 막을 내린다.
작가는 팀의 리더가 토크쇼에 나와 “저는 53년생입니다. 전쟁통에서 사랑이 있었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첫 소설의 주제를 정한다. 그리고 그 소설은 그 후로 12년 동안 “단편이었다가 중편이었다가 도로 단편이었다가 마지막에는 장편이 된다.” 작가가 그렇게 이 소설을 주물러 터트리고 있는 동안 몇 번이나 팀의 재결합 공연이 발표되었다가 취소되기를 되풀이한다.
끝내 재결합 공연이 성사되지 못했더라도 이 소설이 마무리되기는 했을 것이다. 재결합 공연 때문에 독자들이 조금 더 빨리 이 소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작가는 리더인 배철수가 “젊었을 땐 반항기가 멋져 보이더니 나이 들수록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강해진 데다 진정성 같은 것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인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멋있어지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건 유쾌한 일이다.
젊었을 때 그다지 관심 가지지 않았던, 때로는 화면에 보이면 채널을 돌렸던 스타가 나이 들어서 멋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기억이 내게도 있다. 7년 전 그가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이런 글을 남긴 일이 있다.
“37년 만에 다시 가수로 돌아왔다고 한다. 노래를 좋아한 만큼 그에게 호감을 가져본 일이 없어 그러려니 했다. 오늘 그가 방송에 출연해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예순 여덟. 은퇴를 했어도 벌써 했을 나이에 어떻게 가수로 돌아올 생각을 했는지 의아했는데, 오히려 젊었을 때보다 노래가 더 깊어졌고 거기에 기품도 더해졌다. 무대를 떠난 지 37년인데 애를 쓴다고 목소리가 돌아오겠으며, 더구나 칠십 가까운 나이에 어떻게 음정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모든 의문을 불식시킬 만큼 그의 노래는 편안했고 아름다웠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어찌되었든 나이가 들어가며 아름다워지는 사람을 보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가수 정미조이다. 그가 한창 주가를 올릴 때 까닭 없이 그를 싫어했다. 그때에도 그의 노래는 아름답고 격조 있었지만 애써 싫어하려고 했다. 참 이상한 일이지.
배철수도 그랬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멋있어졌고 기품마저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멋있어졌다는 말은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 점에서 작가와 나의 생각이 갈린다. 나는 그가 젊었을 때 한 번도 멋있다고 생각해본 일이 없었거든. 추레하게 다니던 모습만 기억에 남아있다. 아무랬으면 어땠겠는가마는. 그래도 그는 참 멋지게 나이 들었다. 그런 모습이 부럽고,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유쾌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
주인공 홍희는 엽서 꾸미기를 잘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처럼 엽서에 자수를 놓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엽서 꾸미기라면 나도 남 못지않았다. 엽서도 보내고 뽑혀서 당시로서는 고가품인 헤드폰을 상품으로 받기도 했다. 그런데 작가는 나와 띠 동갑쯤 되어 보이는데 그때까지도 엽서를 보냈나 싶기는 하다.
작가가 성덕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흥미진진했던지 밤늦게 도착한 책을 다 읽느라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옛날 생각에 혼자서 실실 거리며 웃기도 했고. 그런데 다 읽고 나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유쾌하고 즐거운 추억보다는 홍희와 그 친구들이 지나온, 그리고 지나고 있는 그늘이었다.
“모두에게 살뜰했던 미호가 유일하게 소홀히 대한 사람은 미호 자신”이었다거나, 만나고는 싶지만 십 년이 훌쩍 지나도록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지 못해 “못을 빼야 할 텐데 빠지기는 할까” 염려하는 모습이라던가. 그 중 암 투병 중이던 은수가 자기를 간호하느라 자기 생활을 제쳐놓은 딸 교연을 바라보며 안쓰러워하는 모습은 두세 번 되풀이해 읽었다. 이유? 그건 나도 모르지.
“교연은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 준비물을 스스로 챙겼다. 초등학교 들어가선 받아쓰기부터 시작해 늘 우수한 성적을 받아왔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교연은 혼자서 묵묵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해냈다. 아프기 시작하자 은수는 그런 일들이 점점 사무치게 맺혔다. 아이 혼자 그것을 해내느라 얼마나 긴장했을 것이며 얼마나 고달팠을까. 은수는 교연을 키우며 교연에게 준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보살핌과 기쁨을 이미 받았다. 교연의 존재 자체가 은수에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고 세상을 살게 하는 힘이었다. 은수는 자신의 요양을 원하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교연의 휴식을 바랐다.”
그런데 췌장암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던 은수가 오진이었단다. 세상에... 그건 좀...
홍희가 은수를 찾으면서 “자신이 은수를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은수도 자신을 보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에 단 한 번의 의심도 품지 않았던 자신이 이상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고 한 말은 곱씹을 만하다. 매사를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못된 버릇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할 말이 아닌가. 물론 내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틀 동안이나 <송골매 재결합 공연>을 보면서 마스크가 다 젖도록 울고 밤새 앓을 만큼 환호성을 질렀단다. 그리고 수 년 간 앓아오던 이명이 사라졌단다. 그러면 이 작품은 소설인가 자서전인가? 아, 이런 걸 보고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가?
날 밤 까며 소설 읽은 것도 참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