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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07.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57)

2015년에는 아들 가족이 리야드로 여름휴가를 와서 한 해를 거르고 2016년 여름에 다시 비스바덴을 찾았다. 우리가 가기 직전에 마티 살미넨과 공연하는 <보리스 고두노프>가 끝나서 아쉬웠지만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후히 헤와 함께 출연하는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을 볼 수 있었다.


사실 후이 헤는 내게 생소한 성악가였다. 그때까지 후이 헤 뿐 아니라 중국 성악가에 대해서도 들어본 일이 없었다. <운명의 힘>에서 후이 헤는 주인공 레오노라 역을, 아들은 일인이역으로 레오노라의 아버지 칼라트라바 후작과 구아르디아노 수도원장 역을 맡았다. 조금 낯선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 성악가가 오페라 한 작품에서 두 역을 맡는 경우가 그렇게 드문 건 아니다. 아들은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에서도 필리포 2세와 종교재판장 역을 맡은 일이 있었다.


후이 헤는 노래보다도 그의 소탈한 성품이 인상 깊었다. 아이들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공연이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기도 했다. 우리와 만났을 때는 그저 이웃집 아낙 같이 수더분했다. 스타의식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때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이 있었다. 아들은 본조 역을 맡았고 나비부인 초초상은 소프라노 조선형이 노래했다. 조선형은 아들의 학교 1년 선배로 학교 다닐 때뿐 아니라 복학하기 전 밀라노에서 공부할 때 가깝게 지냈던 사이이고, 우리도 잘 알고 지냈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언제 무대에 서겠나 싶었는데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함께 노래하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비스바덴을 간 것이 6월이었는데 거리에서는 여름축제가 한창이었다. 사우디는 술을 마실 수 없는 곳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간혹 암거래 되는 위스키를 마시거나 집에서 막걸리를 담가 마시기는 했다. 그런데 맥주는 암거래하기엔 가격이 너무 높아서 마실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그래서 사우디를 벗어날 때면 으레 기내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하곤 했다. 하지만 사우디 항공은 아예 술을 취급하지 않고 다른 항공사도 사우디 영공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술을 서비스하지 않는다.


아내와 바르셀로나에 여행가는 길에 에어프랑스를 타게 되었다. 타자마자 승무원에게 영공을 벗어나는 대로 맥주를 하나 갖다달라고 부탁했다. 이곳이 사우디인줄 알지 않느냐, 얼마나 맥주가 마시고 싶은지 당신은 모를 거다 하며 너스레를 떨었더니 항공기 문을 닫자마자 맥주를 갖다 주는 것이 아닌가. 영공을 벗어나기는커녕 비행기가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그때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갈 때는 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서 우선 맥주 한 잔에 소시지로 갈증을 면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비스바덴 도심 한복판에 살 때여서 창문 밖으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사우디를 떠나기 전부터 이번에는 맥주를 스무 종류 마시고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던지라 축제 모습 중에 맥주 파는 곳으로만 시선이 쏠렸다. 그래도 스무 종류를 마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름 가까이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가 사우디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기어코 스무 번째 맥주를 마셨다.


아들이 <꽃보다 할배>로 유명해진 스트라스부르를 가보자고 해서 며칠 다녀왔다. 하지만 그곳보다는 가는 길에 하루 머물렀던 꼴마르와 리끄위르가 훨씬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아내와 찍은 사진은 지금도 가끔씩 꺼내 본다. 동생들이 곱게 나이 드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던. 둘째 날 밤에 난데없이 오한이 들어 밤새 앓아서 그랬던지 마지막으로 들렀던 스트라스부르가 생각보다 영 별로였다. 꼴마르가 워낙 예뻐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운명의 힘'에서 후이 헤와 공연하는 아들>
<'운명의 힘' 공연이 끝난 후 소프라노 후이 헤와 함께>
<아들 집에서 아들 가족과 함께>
<나비부인으로 출연한 소프라노조선형과 함께>
<꼴마르>
<리끄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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