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고시마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부부 목사님께서 그곳 합창단과 함께 교회를 방문했다. 설교로 말씀을 전하고, 예배 후에는 일본의 차 문화를 소개하고 이어서 그곳 합창단의 공연까지 있었다. 선교사이시니 설교 시간에 선교지 현황이나 어려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짧게 가고시마에 대해 소개한 것 말고는 오로지 말씀에 집중하셔서 뜻밖이었다.
예배 마치고 나오는데 설교를 하셨던 부인 목사님께서 설교단에 서있던 모습보다 자그마한 분이어서 놀랐다. 설교를 떠올려 보면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 설교 내내 압도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압도될 만큼 크게 느껴졌던 무게감 때문에 설교단에 선 모습이 실제보다 크게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식사 후에 이어진 다도 소개 시간에 준비해온 다기에 차를 우려내며 이웃의 문화를 새롭게 체험할 수 있었고, 그곳 전통춤을 함께 배우며 거리감을 한결 줄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무엇보다 서로 만날 기회를 늘이는 게 가장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몇 번 더 만나면 일본과 불편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반응하는 양상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합창단의 공연을 기다리면서 교우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본 음식 뿐 아니라 문화 자체가 단정하고 상당히 절제되었다는 데 서로 공감했다. 합창이 시작됐는데 슬며시 웃음이 났다. 합창이 딱 그랬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쌓아 올렸음에도 터트리지 않고 절제한 채로 마무리 짓는, 그래서 터트린 것보다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안겨주는 모습이 교우와 이야기 나누었던 일본의 단정하고 절제된 문화 그대로였더라는 말이다. 아마추어 합창단이기는 해도 잠깐 들어본 바로는 ‘수준급’이더라는 평가도 꼭 맞았다.
이와는 달리 함께 공연한 오십 후반의 대학 동기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은 흥이 넘쳤다. 단장께서 가고시마의 합창단은 ‘음악적 완성’에 가치를 두었다면 자신들은 ‘우정의 완성’에 가치를 두었다더니 정말 그랬다.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말이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 싶었다. 하긴 즐거우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