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잉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Jan 30. 2024

2024.01.25 (목)

이스탄불 여행기

사우디는 지구상에 거의 유일한 전제왕정국가이다. 국왕을 견제할 기구도 제도도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견제할 파워그룹은 있었다. 군사력을 가진 국방부는 술탄 왕자가 48년, 또 다른 군사 집단인 국가방위부는 압둘라 국왕 부자가 55년, 정보를 쥐고 있고 경찰력까지 갖춘 내무부는 나예프 왕자 부자가 42년, 국제 협력을 담당하는 외교부는 파이살 국왕 부자가 83년, 수도 리야드는 살만 국왕이 48년을 지배했으니 어느 국왕도 전횡을 저지를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후 현 왕세자가 리츠칼튼호텔 사건을 일으켜 각 영지의 영주를 제거하고 명실공히 일인 천하를 세우자 이제는 견제할 파워그룹조차 없는 온전한 전제왕정국가가 되었다.


내 눈에는 이게 보이는데 그동안 이런 언급을 보지 못했다. 그냥 심증으로 놔둘 수밖에.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내내 찜찜했다. 그런데 바로 중동 왕정국가의 통치구조가 그렇다는 논문이며 저서가 이미 나와 있다는 게 아닌가. 워낙 중동 왕정은 국왕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장인 셰이크(Sheikh)들과 공조해 통치하는 셰이크덤(국왕이 통치하는 킹덤에 빗대어)이었고, 그것을 사우디 왕세자가 처음 깨고 나온 것이고. 공부할 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왕세자 본인은 펄쩍 뛰면서 부인하는 카슈끄지 살해를 비롯한 각종 잔혹 사건은 왕세자가 지시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을 뿐 아니라 지금도 피의 숙청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의심받고 있고.


나는 그동안 왕세자에 대한 높은 지지도를 현찰이 아닌 어음으로 여겼다. 구체적으로 국민의 삶이 개선되어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보내는 지지라는 것이지. 물론 여성 운전이라던가 각종 공연을 허용해서 변화를 체감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 통계를 보면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취업률은 개선된 흔적을 찾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구체적으로 최근 5년 사이에 일자리가 무려 280만이 늘었음에도 그 중 200만이 외국인에게 돌아갔으니 정부로서는 남 좋은 일만 한 셈이 아닌가. 그래서 이 지표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로 높은 지지율이 지속되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하자면 어음이 부도나는 상황을 맞을 것이라는 말이지.


그 생각도 맞지만, 취업률로 대표되는 삶의 지표 말고도 개방된 분위기가 민주화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지지도가 거품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단다. 그동안 금지되었던 것을 풀어줘서 감사하지만 곧 그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동안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당연히 누려야 할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것도 계산에 넣어놓자.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비관적인 것은 국가의 이해와 정권의 이해가 다르고 (며칠 전 지인의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자세히 설명) 무엇보다 ‘분쟁으로 자기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집단’이 있어서 상황이 정리되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3H인 하마스, 후티 반군, 헤즈볼라에 이젠 IS까지. 그 설명을 들으면서 학자의 무력감과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혼자서 이곳저곳 쏘다니다가 지인과 함께 저녁 식사하고 이스탄불 야경이 최고라는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보니 두세 시간이 훌쩍.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경제 이야기는 시작도 못 했다.


지금까지 이런 야경을 본 기억이 없다.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이스탄불 가시는 분은 꼭 적어놨다가 가보시라. 달 뜨는 밤, 인터콘티넨탈 이스탄불 스카이라운지.



매거진의 이전글 2024.01.24 (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