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꼬지 마

by 다정



삐딱한 자세를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나 꼿꼿이 서 있는 것보다 기대 있는 것을, 똑바로 앉아 있는 것보다 어딘가에 철퍼덕 기대 다리 꼰 채 앉아 있는 자세를 좋아해 왔다. 원래부터 이런 비뚤어진 자세를 좋아했을 리는 없다. 널브러진 상태가 똑바른 자세보다 더 편하다 보니 그렇게 앉아 왔던 게 습관이 되었다. 이제는 똑바로 앉으면 오히려 허리가 더 아픈 지경에 이르렀다. 뼈와 근육이 그런 자세에 맞게 길들어 온 탓이다.


흐트러진 자세를 좋아하는 내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침대에 누울 때다. 깨끗하게 씻고 보들보들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로 올라가 철퍼덕 눕는 딱 그 순간이 나에겐 최고의 휴식이자 위로다. 하루 동안의 모든 긴장과 예민함을 벗어던지고 아무렇지 않게 헝클어져도 되는 순간, 아무것도 나를 얽매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로 나태한 그 순간이 좋다.


흐트러진 자세가 내게 준 건 기분 좋은 나태함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삐딱한 자세로 살아온 내 몸은 불균형의 몸이 되었다. 횡단보도 초록 불을 기다리는 단 몇 분을 서 있기 힘들어 연석에 몸을 기대기 일쑤고,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뻐근해져 오는 목과 허리 때문에 몇 번이고 몸을 비틀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오르간에 앉을 때도 마찬가지다. 한 시간 남짓 잔뜩 긴장한 자세로 오르간을 연주하고 내려오면 남은 하루 동안은 아픈 허리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


나는 틀어진 몸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 6개월 전부터 걷기 시작했다. 원래 러닝을 하려고 했지만 허리가 아파서 엄두가 안 났다. 처음엔 삼십 분만 걸어도 다리와 허리가 쑤셨는데 한 달 정도 매일 걷다 보니 서너 시간은 거뜬히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때 러닝을 시작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집 앞 산책로로 나가 20분 30분씩 뛰었다. 가끔은 친구와 같이 뛰었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니 더 의욕이 났다.


얼마 전에는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어쩌다 동생에게 양도받아 시작하게 된 운동인데 나의 비뚤어진 몸 균형을 너무나 명확하게 짚어주었다. 어떤 근육이 힘을 잘 못 쓰는지, 어떤 관절이 유연한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컸다. 무턱대고 걷고 달리던 때와는 조금 달랐다. 우연이 인연이 되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벅차고 기쁘기에 양도받은 기간이 끝나도 계속 연장해서 다닐 생각이다.


헝클어진 자세가 내 삶까지 뒤틀리게 만들지는 않았나 생각한다. 항상 이 마음 저 마음에게 기대고, 홀로 버티다 아파져 오는 마음을 한참 동안 붙잡고 다독이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어떤 올곧은 것들이 내게 다가와도, 다리 꼰 채 삐딱하게 앉아 게으른 마음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였던 시간을 돌아본다.


걷고 뛰고 땀 흘리는 행위가 나의 망가진 균형을 되찾아 주고 있는 것처럼, 꼰 다리와 팔짱을 풀고 반듯한 마음으로 당신과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망가진 마음과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어 본다. 혼자가 힘들다면 누군가와 함께, 덮어놓고 외치는 회복이 아니라 문제와 상처를 직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노력들이 삶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 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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