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슬픔 (1)

by 다정



3년 전 대학에서 학보사 편집국장 하던 시절 발행한 학보를 다시 읽었다. 그 학보를 준비할 때는 학내 성폭력 문제 공론화 이후 2차 피해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한 학우의 죽음으로 학교가 매우 소란스러웠던 때였다.


어느 방학 날, 대학언론 사진기자 모임이 잡혀 고대신문에 방문했다. 회의가 끝나고 고대 안 카페에서 사람들과 커피를 주문한 후 기다리고 있었다. 우망에게 전화가 왔다. A가 죽었다는 소식. 우망은 낮고 마른 목소리로 A학우의 부고를 전했다. 얼굴을 쓸어내리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통화를 끝낸 후,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진기자들 틈에서 노트북을 열어 이전에 A학우와 관련해 작성한 기사를 검토했다. 짚어내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을까, 무엇을 더 해야 했을까, 혹시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있었을까, 혹시 이 기사가 문제가 되었을까, 혹시… 이미 정지된 사고에 아무것도 더 생각할 수 없었다.


A학우 부고 소식을 듣고 나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학교 친구들에게 하나둘씩 연락이 왔다. A학우 이야기 들었다고, 무슨 일인 거냐고, 어떻게 된 거냐고. 학교에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할 때면 종종 그런 식으로 친구들이 내게 연락해 사건의 전말을 묻곤 했는데, 그날은 그런 모든 연락이 달갑지 않았다. 그들이 묻고 싶은 게 뭔지 되려 내가 묻고 싶었다.


우망과 함께 장례식장에 가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조문 예절을 검색하며 시흥으로 향했다. 입장할 때 먼저 조객록 작성하고, 빈소에 들어가서는 먼저 상주와 묵례를 나누기, 향에 물을 들어 붙인 후에…. 장례식장 앞 편의점 ATM기에서 부의금으로 낼 현금을 뽑고 검은색 양말을 사 신은 후 짧게 심호흡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낮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슬픔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조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식사가 나왔고, 우망과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지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묵례를 나눌 뿐이었다.


나와 우망은 A학우가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론화했을 때 각자의 플랫폼으로 보도를 담당했던 취재기자였다. 나는 기사로, 우망은 뉴스 영상으로 보도했다.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작게 떨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똑같은 생각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 기사가, 뉴스가 잘못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조금 더 꼼꼼하게 취재했어야 할까. 취재할 때 A학우의 이야기를 조금 더 많이, 더 오래 들었어야 했을까. 공론화 이후 그에게 저열한 비난을 던지며 상처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그의 기억에, 혹 우리가 힘을 보태었던 것은 아닐까. 작은 단어 하나라도 그랬던 것은 아닐까. 후회이자 자책이고 반성이고 뉘우침인 시간이었다.


이후 일상으로 돌아왔다. 예전과 같진 않았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A학우의 성폭력 피해 사실 공론화 당시 무책임하게 대응했던 학교를 규탄하고, 성폭력 문제에 대한 수동적인 학내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한 목표로 반(反) 성폭력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개강 후 수차례 학내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학내 중대 사안에 대한 취재와 후속 보도는 꼭 필요한 일이므로 내가 몸담고 있던 학내 언론사에서도 취재를 진행했다. 후속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는 학교의 비협조적이고 폐쇄적인 태도, 그로 인해 찾아오는 무력감과 싸우며 힘들어했었다. 그럼에도 몇 번이고 담당 부서를 방문해 직원을 취재하고 때로 언쟁하며 제 몫을 다했다. 기사 탈고를 끝내고 기자는 "나는 기자이지도, 그렇다고 아니지도 않은 사람이구나"라고 했다. 진짜 기자가 아니라 단지 학생기자일 뿐인 우리가 학교 안에서 기자 직함을 달고 발 빠르게 뛰어다니며 하는 모든 일들이 때로 우스워질 때가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는 일은 잘 없고, 누군가의 업신여김이나 비웃음, 외면, 조롱 같은 게 큰 역할을 했다.


기사가 실린 학보가 발행되고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기자가 취재했던 학교 부서 직원에게 팔로우업 목적으로 재방문했을 때 직원의 상사가 소리 지르고 화를 냈다. 자기들을 기사에 나쁘게 써 놨다는 이유에서다. 당신들을 나쁘게 써 놓은 게 아니라, 당신들 행동이 나쁜 거잖아요. 나쁘게 행동한 걸 그대로 적은 거잖아요. 찾아가서 똑같이 소리 질러 주고 싶었다. 담당 기자는 그 학기 마지막 편집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취재원은 소리 지르며 화냈고 저는 선 채로 들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수치스러워하다가 오늘까지 왔네요. 참 많은 용기와 노련함이 필요했는데 매번 버거웠습니다. 부디 제 기사가 누군가에겐 유익했길 바라요. 함께해 준 기자들과 친절을 베풀어 주신 취재원분들, 그리고 읽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여전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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