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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19. 2024

마지막 크리스마스




“엄마?”


아이가 방 문을 반쯤 열어 고개만 안으로 들이밀었다. 이어 작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급히 훔쳐내고 반사적으로 아이를 향해 팔을 벌렸다.


“응, 하온아.”


나의 목을 감아오는 아이의 작고 보드라운 손이 다정하고 따뜻했다. 아이는 나에게 뺨을 맞대며 물었다.


“엄마, 괜찮아요?”

“그럼. 괜찮고 말고. 하온이 엄마랑 같이 책 읽을래?”


아이는 “네.” 했다. 우리는 함께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볼에 입을 맞춘 뒤, 정신의학과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셨던 그림책을 펼쳤다. 교수님은, 이혼이 결정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해주기를 권하셨다. 책을 다 읽어 준 다음 아이에게 그와 나의 상황을 설명하기로 했다.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이유를 아직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없어. 우리 하온이가 너무 어리거든.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그건 하온이 탓이 아니야. 엄마 아빠는 하온이가 잘못해서 이혼하는 게 아니니까. 아빠가 떠나면, 우리 가족의 생활이 많이 달라지겠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어. 엄마 아빠가 언제나 널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거야.”     


목이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릿해졌다. 내 품에 앉은 아이는 고개를 뒤로 젖혀 나를 마주 봤다. 말갛고 까만 눈동자에 고인 작은 물방울이 창밖의 햇살을 받아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아이는 몸을 돌려 가만히 나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작고 나직한 소리로 내게 말했다.


"괜찮아요, 다 지나갈 거예요. 내가 곁에 있을게요. “


텅 빈 마음을 차가운 바람이 베는 듯 시리고 아프던 2021년 겨울이었다.          




겨울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참 좋아했다. 반짝거리며 빛나는 트리 장식도,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캐럴의 멜로디도,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와 종소리도 언제나 내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럴 수 없었다. 지나치게 고요하고, 지나치게 외로웠으며, 지나치게 한기 서렸다.


아침부터 아이는 초콜릿케이크를 사러 가자며 나를 졸라댔다. 우리 가족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겐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온아, 나중에. 나중에 외할머니 댁에 가서 이모랑 같이 파티하자.”


아이를 다독여 설득해 보았지만 아이는 단호하게 나의 거절을 거절했다.


“안 돼요. 오늘이에요. 오늘 꼭 파티를 해야 돼요.”


이리 고집을 부리는 아이가 아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오를 만큼 간절하게 초콜릿케이크를 원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우리 아빠한테 부탁해 볼까?”


아이는 금세 표정이 밝아져 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들어오실 때 초콜릿케이크 사 올 수 있어요? 초콜릿케이크 사가지고 빨리 들어올 수 있어요?”


그를 향한 아이의 주문을 들으며 ‘당신 오늘 그 여자를 만나긴 글렀구나.’ 싶은 생각에 알 수 없는 희열감이 느껴졌다.


퇴근길 그의 손에는 초콜릿케이크가 들려있었다. 20분을 줄 서 손에 넣은 이름 한번 거창한 갸또 쇼콜라라고 했다.


케이크에 스물다섯 개의 초를 꼽고 불을 밝혔다. 아이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언가 고민하는듯싶더니 예수님을 향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우리 세 식구는 손을 맞잡아 소원을 빌고 촛불을 불었다.


아이는 그와 나에게 줄 것이 있다며, 준비한 카드를 건네주었다. 카드 앞장에는 트리 앞에 앉아 행복하게 웃고 있는 한 가족이 그려져 있었다. 카드를 읽는 그의 시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급기야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도무지 그것을 펼쳐 볼 자신이 없었다. 망설이는 나를 향해 아이가 속삭였다.


“엄마, 내가 읽어줄게요.”

나는 마지못해, “응... 그래...” 했다.     


“엄마, 요즘 힘들고 우울하시죠? 엄마 그 마음 알아요. 저도 같은 기분이에요.

그래도 우리 힘을 내자고요. 슬프긴 하지만 아빠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자고요.

오늘 아빠와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 보내요.

마지막 크리스마스는 엄마, 아빠와 함께 파티하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메리크리스마스!”     


“아빠, 그동안 일하느라 힘드셨죠? 제가 아빠를 힘이 나게 해 줄게요.

저는 요즘 기분이 속상해요. 그 생각만 하면 울어요. 전 마음이 너무 아프고 답답해요.

내가 그러는 이유가 아직은 이해가 될락 말락 해요. 아무튼 슬프다는 소리예요.

엄마도 나랑 같은 마음이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아요.

우리 가족이 사랑한다는 것도 변하지 않아요. 엄마와 아빠가 다시 가까워졌으면 좋겠어요.

메리크리스마스!”     


목 밑에서 울컥 치미는 뜨거운 기운이 올랐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면 정말로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가스러지는 숨을 골랐다.


‘하온아, 미안해. 엄마가 너무 미안해.’

입안에서 이리저리 도는 말을 삼켜버렸다.     


“하나님이 제 소원을 들어주실까요?”

그를 향해 아이가 물었다.


“하나님은 아이들의 기도를 잘 들어주시긴 하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그가 답했다.


“그럼 제 기도도 들어주시겠네요?”

아이의 목소리에 희망이 함께 묻어났다.


“글쎄, 너무 기대하지 마.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아빠는 하온이가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의 말을 듣자마자 내 안에서 불현듯 폭풍이 일었다. 하마터면 테이블 위 쇼콜라 케이크를 그의 입구녕에 쑤셔 넣어버릴 뻔했다. 한마디만 더 했다면 정말로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불안해 다급히 말을 잘랐다.


“우리 하온이 산타 할아버지 오시기 전에 자야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 방을 향해 돌아섰다.     




설거지와 주방 정리를 끝내고 시계를 보았다. 11시 20분. 불 꺼진 집 안에 고요가 찾아왔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였던가 의심이 들 만큼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고도 쓸쓸했다.


나는 산타의 선물을 대신할 빨간 리본이 달린 상자를 꺼내 들고 조용조용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창밖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앉은 아이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울음 섞인 아이의 기도 소리를 멍하니 들었다.     


“하나님, 하나님은 아이들의 기도에 응답을 주신다고 들었어요. 저 선물 필요 없어요. 앞으로 산타 할아버지 기다리지 않을게요. 대신 아빠의 마음을 돌려주세요. 우리 가족이 영원히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지켜주세요. 제게 아빠를 빼앗아 가지 말아 주세요.”     


아이의 작은 어깨가 흐느끼듯 떨리고 있었다. 타당하지 않았다. 공평하지 않았다. 저 아이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나는 순간 다리가 풀려 벽에 기대 무너지듯 주저앉아버렸다. 바르르 떨리는 입술에선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울음이 울컥울컥 목을 넘어왔다. 소리가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손을 포개어 입을 틀어막았다. 진정할 수 없었다. 아니, 진정이 될 수 없었다. 어디로든 당장 뛰쳐나가야 했다.


차 키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차에 타 시동을 걸고 그렇다 할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액셀을 밟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탓에 눈앞이 하얗게 흐려졌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질어질 흔들리는 텅 빈 4차선 도로 위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어둑하게 까맣던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그에게 차유진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도 소중했을까. 작고 어린 아들의 손을 냉정히 놓아버릴 만큼 애절한 사랑일까. 나와 아이는 그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을까. 정신이 아득해졌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눈발이 되어 머릿속에 흩어져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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