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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19. 2024

마지막 크리스마스 (ver. 현우)




(ver. 현우)는,
남편이 쓴 글을 토대로 합니다.


“아빠, 들어오실 때 초콜릿케이크 사 올 수 있어요? 초콜릿케이크 사가지고 빨리 들어올 수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서 아이의 표정이 고스란히 읽혔다. 마치 하온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내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 아빠가 들어갈 때 맛있는 초콜릿케이크 사가지고 갈게.”


아이는 ‘빨리 올 수 있냐.’ 재차 물었고, 확답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전화를 끊었다.


하온이는 가끔씩 열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들었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랬다. 밝고 따뜻하고 애교가 많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나는 그런 내 아이를 사랑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백화점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지하 1층 식품관으로 내려가, 베이커리를 찾았다. 갸또 쇼콜라로 워낙 유명한 맛집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매장 앞으로는 케이크를 사려는 손님들이 줄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족히 20분은 기다려야 할 노릇이었다. 평소라면 단번에 포기하고 돌아섰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하온아?”


나는 집으로 들어서며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아빠” 하며 반갑게 달려 나왔다. 초콜릿케이크를 바라보는 하온이의 눈에 환한 웃음이 스쳤다.


온 집안에서 고소한 감바스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나도 모르게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아이가 바라는 대로 촛불을 함께 불었다. 아이는 나와 아내에게 제 손으로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를 한 장씩 건네주었다. 카드를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나는 담담하게 아내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의 어깨가 희미하게 떨렸다.     


‘엄마와 아빠가 다시 가까워졌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멀리 와버린 느낌이었다. 한순간의 실수, 믿음을 잃었다는 슬픔과 후회, 나에 대한 자책과 죄의식이 서로 엉키고 뒤엉켜 고통으로 몰려왔다.


‘아내는 이전처럼 나를 안아줄 수 있을까? 내가 저질러놓은 일을 다 알고도 나를 다시 믿어줄 수 있을까?’

그곳으로 건너가고 싶었다.     




“엄마, 엄마?”

닫힌 방문 너머로 하온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실로 나가 아이를 살폈다.


“하온이 안 잤어? 엄마 어디 갔는데?”

“모르겠어요, 엄마가... 엄마가 없어요.”


아이의 목소리에 불안함이 가득 묻어났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이었다.


“괜찮아, 엄마 곧 올 거야. 아빠랑 같이 자자.”


나는 아이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와 함께 누웠다. 아이의 얼굴에 엷은 그늘이 깔렸다. 아이가 내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속삭였다.


“아빠, 저 강아지 키워도 돼요? 아빠가 없으면, 내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요.”


아이의 말이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팠다. 겨우 가라앉힌 눈물이 다시 차올라 괴로웠다.

나는 애원하는 아이의 눈을 외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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