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첫 관측

소설 연재

by 서인석

별을 관측하거나 하늘의 사진을 찍는 일은 그렇게 쉽게 기회를 내어주지 않았다.


아무 성과가 없었던 첫째 날 뒤로도 몇 번이나 캠프 스팟만 밟아보고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천막조차 꺼내지 못하는 상황은 차라리 나았다. 캠프 세팅이 진행 중이거나 끝날 때쯤에 예상치 못한 이유로 철수하면 진이 빠졌다.


경찰이나 동네 이장이 찾아와서 "여기서 캠핑하시면 안됩니다!"며 제지했던 적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떤 호소나 타협도 무의미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후 빠르게 캠프를 철수하는 것이 가장 나은 해답이었다.


혹은 차를 괜찮은 위치에 댄 후, 주변 땅을 발로 다지다가 녹슨 '입산 통제' 표지판을 보게 된 경우도 있었다. 누가 제지하지 않더라도 이런 위치는 피해야 한다. 인적이 드문 산에는 해체되지 못한 지뢰들이 남아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며칠을 그렇게 운전실력만 늘던 중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장소를 찾게 됐다. 인적이 드물면서도 도로와 멀지 않고, 별을 볼 수 있는 시야까지 괜찮아 보이는 장소. 캠프 세팅도 이제 능숙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쳤을 때 즈음, 때 늦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황급히 망원경과 전자기기 먼저 차안으로 밀어넣었다. 천막은 비를 어느정도 막아주고 있었지만 돗자리 안까지 비가 들이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해가 떨어지고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또 캠프를 철수해야 하나.


하늘도 무심하시지,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며칠간 제대로 캠프조차 차리지 못한게 반복되다보니, 별 보는 생활에 대한 기대는 무뎌져 있었다. 대신,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며 냉소적인 계산을 해야했다. 빨리 철수를 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에 눌러앉아볼 것인가.


나는 장기전을 결정했다.

일주일 가까이 캠프를 설치했다가 해체했다가를 반복하다보니, 별 보는 생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게 좋은 망원경이나 카메라, 천문학적 지식 등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장소가 제일 중요했다.


문득 고구려 역사에서 읽었던 양만춘 장군이 떠올랐다. 수십일간의 장기전을 준비하던 장군의 마음. 아마 현대의 한국어로 옮겼다면, '안시성 존버'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존버'라는 말의 유쾌함을 새삼 느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이제 나의 안시성이 될 모양이다.



조수석에 보관해둔 식사거리를 꺼냈다. 마을에서 한보따리 사 온 컵라면과 빵, 토스트, 샌드위치 등이 있었다. 샌드위치를 먼저 먹어야 했다. 차 앞유리를 세차게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대시보드의 거치대에 태블릿을 올려두고 별 관측 영상과 천문학 관련 유튜브를 틀었다.


비는 9월이 오기 전, 모든 수분을 털어내려는 듯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나도 그냥 물러날 수 없다. 식사를 마친 후, 아예 뒷 좌석을 취침을 위한 모드로 쭉 펼쳤다. 2열의 왼쪽과 트렁크의 왼쪽을 접었다. 이 형태면 2열과 트렁크의 오른쪽에는 짐을 그대로 둘 수 있고, 왼쪽은 침대가 된다. 왼쪽에 매트리스를 펼쳤다.

자, 이제 누가 이기나 보자. 선루프를 강하게 때려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선잠에 들며 기대감에 빠졌다.

'내일 비만 그치면, 이제는, 정말, 진짜로, 비로소, 이만한 장소는 없겠지.'



언제 잠에 들었을까.

선루프의 햇빛 가리개를 닫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햇빛이 얼굴 정면으로 내리쬐고 있었다. 찌뿌둥하게 일어났다. 떠난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정말로 나그네처럼 밖에서 잠을 잔 건 처음인 날이 됐다. 캠프 자체를 차릴 수 없던 지난 날들이었기에, 계속 찜질방과 여관 신세였다.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왔다. 하늘먼저 바라봤다. 비 덕분인지 구름 한 점 없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기를 떠나지 않은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 만약 하늘이 이 상태를 유지한다면 이 스팟은 아예 천문대나 다름없다.


아침 여덟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주변을 돌다가 천막과 돗자리를 보니 잠이 화들짝 달아났다. 아침부터 바쁘겠구나. 천막은 완벽히 젖어 있었고 돗자리도 물투성이었다. 땅도 질은 편이었다. 하지만 땅이 질어서 캠프조차 못 치고 떠났던 첫째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돗자리가 물을 막아준 덕에, 돗자리 아래의 땅은 다른 땅들보다 상태가 좋았다.


좀 더 먼 위치까지 주변을 조금 살폈다. 이 스팟은 공터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무들이 빽빽한 편이 아니었고, 듬성듬성 바위들도 있었다. 일단 돗자리를 턴 후 가장 커 보이는 바위 위에 널었다. 이 정도의 일조량이면 금방 마를 것 같았다. 천막은 해체하지 않고, 물만 아래로 주욱 쏟아냈다.


어느정도 주변이 정리된 후, 캠핑용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끌어냈다. 포트에 물을 끓였다. 원두통을 열고 그라인더에 원두를 넣었다. 원두가 갈리는 동안 산 속에 커피향이 넓게 퍼졌다. 이 생활을 시작하기 전 상상했던 모습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커피 냄새도 중요 장면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 간단한 커피 한 번 내리는 행위를, 거의 일주일만에, 처음 해냈다.


***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시간은 제곱의 속도로 흘러간다. 첫 관측이 그랬다.


별을 보기 위해 모든 걸 털고 떠나기로 결정한 후, 떠나는 날까지의 시간은 매우 더디게 흘렀다. 반대로 이 생활을 시작한 후, 며칠내내 실패만을 경험한 상태에서 밤을 맞이하려니, 밤까지의 시간이 두 배로 빠르게 흘렀다. 아침과 점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닦았던 망원경의 렌즈를 여러번 다시 닦고, 카메라를 확인하고, 노트북과 태블릿의 성능을 벤치마크하고, 외장하드의 용량까지 다시 확인했다. 전기의 안정적인 공급을 몇번씩이나 체크했다.


오후 서너시쯤이 되어서는 널어두었던 돗자리를 다시 깔고 자리를 세팅했다. 간이 테이블과 캠핑 의자를 필요한 모양새로 배치했다. 망원경과 노트북, 카메라를 적당한 위치에 두었다.


하루 더 두면 완벽히 상할 것 같이 말라버린 조수석의 토스트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기다렸다는 듯 해는 떨어졌다.



마치 수능보는 날 아침과 같은 묵직한 긴장감이 어둠과 함께 다가왔다. 이제서야 처음이다. 모든 관측 준비를 마친 뒤, 제대로 된 밤을 맞이하는 일이. 망원경에 눈을 대기 전, 육안으로 밤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필요한 별의 위치와 달의 위치를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짚어보며 나침반을 함께 확인했다.


방랑자 생활을 시작하고 단 한번도 망원경으로 관측을 성공한 적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 눈으로 밤 하늘을 아쉬운 마음을 담아 스쳐보면서 느꼈던 사실이 있다. 시골에서 보는 밤 하늘의 별은 정말로 풍성하다는 사실.


밤 하늘에서 눈을 뗐다. 망원경의 접안부에 눈을 갖다댔다.


갑자기 별들이 나를 덮칠 듯 가까운 거리로 날아들었다. 육안으로 보는 별이 '쏟아지는'느낌이었다면, 망원경으로 보는 별들은 총알처럼 내 눈을 향해 '날아드는' 느낌이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신비로웠다. 오래 응시하고 있으면 눈을 찌를 것처럼, 별들은 그렇게 밝고 뜨겁고 날카로웠다.


망원경과 카메라를 거치해둔채, 녹화를 위해 세팅해둔 카메라와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고요 속에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별의 무한한 총성이 어떤 방해도 없이 영상으로 담기고 있었다. 요 며칠간 보였던 구름도 오늘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달이 작았기 때문에 별은 더욱 밝았다.


조바심에 발전기를 확인했다. 전기는 문제 없어보였지만, 코드를 뺀다고 가정하더라도 노트북, 카메라 모두 상당한 시간을 견딜 수 있을 듯했다. 해가 뜨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 없을 것 같다.


한 시간여 정도를 가만히 모니터와 하늘을 번갈아보며 감상에 빠졌다. 풀벌레 우는 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소리, 풀과 나무들이 부딪혀 내는 사부작대는 소리가 화이트 노이즈로 다가왔다.


별이 찬찬히 하늘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덮쳐온다. 인간의 존재에 관해 일생동안 고민했던 수 많은 철학자들이 만약 이렇게 밤 하늘을 바라봤다면, 원하는 답에 더 가까이 다가갔을까.



두 시가 넘어가니 목과 허리가 뻐근했다. 조금 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곤하진 않았다. 물을 끓였다. 혹여나 해가 될까봐 최대한 망원경에서 떨어졌다. 라면에 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렸다. 물을 붓기 전까지는 그 정도로 배고프진 않았는데, 라면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라면의 맛은 마치 모니터로 보이는 하늘만큼 말도 안될 정도로 깊었다. 아침에 커피향이 퍼졌던 장소에, 이제 라면냄새가 강렬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고 있었다. 책을 꺼내고 싶었지만 불을 켜면 망원경과 카메라, 컴퓨터에 담기고 있는 빛에 해를 줄 것 같았다. 물론 그 정도로 허술하게 설치하진 않았지만, 하늘을 담는게 처음이다보니 과하게 조심스러워졌다. 망원경 주변을 둘러보고 잘 고정되었는지를 확인한 후 차로 들어갔다.


차 안의 커튼을 내리고 망원경이 설치된 쪽만 보이게 살짝 열어 둔 채 차의 불을 하나만 켰다. 차는 충분히 아늑하고 넓었다. 챙겨온 책들 중 셜록홈즈를 꺼내들었다. 홈즈와 왓슨의 흥미진진한 모험이, 별과 하늘만으로 가득찼던 내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팔과 겨드랑이 사이에 쿠션 하나를 받치고, 허리에 쿠션 하나를 받친 채 글에 빠져들었다. 드문드문 망원경이 보이게 거두어 놓은 창 너머를 보는걸 잊지 않은 채. 서서히 눈이 감길때마다 시트를 조금씩 뒤로 젖혔다.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마치 고난이도의 요가 동작처럼 뒤틀려있었다. 하지만 아크로바틱한 자세와는 모순될 정도로 개운했다. 책은 의자 아래로 떨어져 있었고, 허리에 있던 쿠션이 머리 뒤쪽을 받치고 있었다. 담요도 몸의 반 이상을 덮고 있었다. 내려져 있는 커튼 틈새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기지개를 켜며 서둘러 일어나 차 밖으로 나왔다. 망원경부터 정리해야 한다. 망원경과 카메라, 노트북의 녹화를 끄고 연결을 해제했다. 그리고 장치들을 해체하기 전, 노트북에 저장된 영상들을 빠르게 돌려봤다.


감탄. 완벽한 하늘의 움직임이 담겨 있다. 며칠간의 헛된 방랑을 완벽히 뒤집는, 역전골 같은 성공이다. 그것도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계를 보니 일곱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제대로 담긴 별과 하늘을 영상으로 보니 긴장이 풀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하품을 했다. 주섬주섬 망원경과 카메라, 노트북의 먼지들을 털어내며 정리했다. 조금만 자자. 만족스러운 시험 성적표를 받은 학창시절 어느날과 비슷한 기분이 따스하게 몸 안에 퍼졌다.


장비들을 정리함에 착착 정리한 후 차 문을 열고 시트를 쭉 넓게 펼쳤다. 매트를 깔고 베개를 팡팡 두드려 눕기 편하게 만든 후 조수석과 운전석 쪽의 창문만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만 열었다. 스트레칭을 가볍게 한 후 누웠다. 누웠다는 자각조차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빠르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온전히 내 것이 된 밤 하늘 속으로 쭈욱 빨려 들어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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