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빨래는 고난이도의 업무

소설 연재

by 서인석

방랑자의 생활이 지속되면서 예상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가장 힘든 일은 빨래였다.


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정한 몇가지 그라운드 룰 중 하나가 '등산복 입지 말기'였다. 캠핑생활 와중에 정장차림까지 유지할 순 없더라도 후줄근한 등산복 차림의 생활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젊음'을 자각하고 싶어서 정했던 룰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드러내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다. MBTI로 치면 전형적인 I에 해당하는, 딱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청년'이라는 타이틀만은 드러내고 싶었다. 특히 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사회의 굴레에서 떨어져 나온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스스로도 뿌듯할 정도로 파격적인 결정과 행동을 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젊음'이었을텐데, 이 생활동안 젊음을 숨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게 아닐까.



첫날부터 골백번은 느꼈지만, 이상과 현실은 항상 괴리된다. 노숙자에 가까운 방랑자가 그라운드 룰까지 지키려면 청바지와 맨투맨스웨터가 마지노선이다.

니트류의 옷은 흙먼지와 땀에 취약하다. 남방이나 셔츠는 천막을 설치하다가도 찢어질 수 있다. 게다가 저녁에 기온이 떨어지면 보온을 해주지 못한다.


청바지와 스웨터, 그리고 겉에 걸칠 수 있는 셔츠형태의 자켓이나 짚업 정도. 좀 더 기온이 떨어지는 날을 대비해서 압축이 가능한 패딩 정도는 구비가 되어 있어야, 그라운드 룰을 지키면서도 의식주 중 '의'를 충실히 소화할 수 있다.


바로 이 룰 때문에 꽤나 고생해야 했다. 일단 짐이 늘어난다. 만약 등산복류의 상하의로 이 계획을 짰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짐을 줄일 수 있었으리라. 무엇보다 빨래의 문제를 엄청나게 해결했을 터다.



나는 총 다섯벌의 색깔과 디자인이 다른, 맨투맨 스웨터를 챙겼다. 그리고 활동하기 편한 청바지 세벌을 챙겼다. 경량 패딩 하나와 집업 후드 하나, 자켓 두개를 챙겼다. 사람들이 있는 곳, 이를테면 마을을 가야할 때 입기 위해 세련된 롱 가디건도 하나 챙겼다.


속옷 상의는 긴팔 반팔소재를 섞어서 열 개를 챙겼고, 팬티도 열개를 챙겼다. 내복 하의도 세 개를 챙겼다. 속옷은 대부분 폴리 소재. 속옷들은 등산복이나 운동복에 비해 불편할 옷차림을, 옷 내부에서 최대한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해야 했다. 짐을 쌀 때는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폴리 소재의 속옷을 넉넉하게 챙긴게 큰 도움을 준 셈이다. 이들은 땀으로부터, 온도로부터 신체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주고, 쾌적함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 외에도 운동할 때 입던 통이 큰 7부 반바지와 잘 때 입는 넉넉한 반팔 면티 서너벌씩을 함께 챙겼다.



이렇게 챙긴 '의'는, 큰 박스 하나를 아주 꽉꽉 눌러서 채운 양이다. 깔끔한 정리가 일상화되지 않으면 아예 이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철저하게 계획하고 출발했다고 생각했지만, 계획과 다른 상황의 대다수가 빨래에서 발생했다. 일단 옷의 양이 적은 편이 아니었고, 생각보다 손빨래를 할 수 있는 야생 공간은 없었다. 거의 모든 경우, 자연상태의 물들은 깨끗하지 않거나 충분하지 않았다. 손수건을 물에 적실 정도, 손발 씻을 수 있는 정도의 물만 있어도 감사해야하는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1일 1목욕, 적어도 2일 1목욕을 또다른 그라운드 룰로 정해놓았었기 때문에, 옷을 갈아입는건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세탁소였다. 속옷을 포함한 뭉텅이의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고 건조까지 돌리려면 코인세탁소가 제격이었다.


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포털의 지도를 검색하고는 '생각보다 강원도에도 코인세탁소가 많네!'라고 판단했고 가벼이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어느 산등성이에 캠프를 차리더라도, 세탁소는 10km이내의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차로 왔다갔다 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거리까지 재보면서 스스로 뿌듯해 했었다.

'세탁소 거리까지 재볼 정도로 계획성 있는 생활이 되겠군!'



초보 노숙자가 간과했던 것. 바로 도로의 험난함 여부와 지대의 높낮이었다. 도로로 10km 거리라도 가파른 산길과 돌길을 통과해서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다. 나는 사흘에 한번은 코인 세탁소를 꼭 찾아 들렀는데, 그 날은 세탁소를 가지 않는 날보다 훨씬 바쁜 날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차가 움직이려면 모든 짐을 싹 차에 넣고 이동해야 했기에, 같은 장소에 두 번 캠프를 차리는 반복 작업을 해야하는 상황도 생겼다. 비효율성을 담보하고라도 세탁은 해결해야 했고,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또 코인세탁소를 찾더라도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는 시간이 붕 뜨게 된다. 나중에는 아예 세탁소를 중심으로 시간계획을 짜기도 했다. 가령 스팟을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마을을 거쳐서 세탁소를 먼저 방문하고,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등으로.



이렇게 빨래는 방랑자 생활 내내 가장 비효율적인 반복 노동으로 나를 괴롭혔다. 건조기에서 뽀송뽀송하게 마른 빨래를 꺼내는 그 찰나만 행복했고, 그 빨래를 차로 옮기고 짐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정리하는 과정동안 또다시 땀을 흘려야 했다.


혹자는 묻기도 한다. 그렇게 힘든 빨래 업무가 있었던 날은, 별이 더 예쁘게 보이지 않냐고.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글쎄.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빨래날은 더 지치고 시간에 쫓겨서 관측이 시작된다. 빨래는 그렇게, 현실과 괴리된 이상의 맹점을 여행 내내 되새기게 해준 조연으로 남았다. 아니, 악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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