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심지를 벗어나고, 산이나 언덕, 높은 곳들을 찾아다니다보면 네이버나 카카오같은 포털 사이트의 지도가 모든 걸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령 길이 없다고 되어 있지만, 가보면 갈 수 있는 그런 길들도 많다는 점. 물론 이런 길을 갈 때는 항상 위험부담을 안고 가야 한다. 지도에 표시가 되지 않은건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 관측에 성공한 이후, 몇 곳의 장소를 옮겨다녔다. 괜찮은 기억을 남겼던 스팟에서 왜 굳이 자리를 떴냐고 묻는다면, "같은 곳에 100일동안 있을 순 없잖아요."라고 밖에 대답할 말이 없다. 만약 정말로 순도 100퍼센트로 별 사진만 잘 찍어보겠다고 이렇게 떠난거라면, 전국 곳곳에 위치한 천문대에 취직을 하는게 나을 것이다. 별은 나의 주 목적이고 꿈이지만, 나의 생활은 방랑을 함께 담고 있다. 별을 눈에 담는 순간만 목적이 아니라는 것. 캠프를 설치하는 것부터 다음날 눈을 떠서 커피를 내리는 행위까지가 모두 한 장면이라는 것.
어제의 스팟에서는 괜찮은 사진을 건지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지도의 등고선을 손가락으로 짚어본 후 더 높은 곳으로 차를 몰았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눈 앞에 보이는 그 길을 따라서 차를 몬 것이다.
지도대로면 평탄한 언덕배기를 만난다고 되어 있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 점점 나무들이 빼곡해지기에 살짝 겁이 났다. 일단 차를 멈추고 걸음으로 조금 올라갔다. 한 10분 정도 올라가니 마치 캠핑을 하라고 미리 준비가 되어 있던 것처럼 광활한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다시 10분 정도를 내려와 운전석에 다시 앉았다. 날이 밝았기 때문에 길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일단 여기서 별이 잘 보이느냐는 둘째치고, 차를 받쳐놓고 며칠 생활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찾았다는 생각 때문에 콧노래가 나왔다. 그렇게 자신있게 엑셀을 밟았는데 갑자기 지진처럼 차가 쿵 내려 앉았다.
순간적으로 놀라서 내리지도 못하고 핸들만 잡은 채 멍-해졌다. 고개를 몇 번 좌우로 흔들고 정신을 차린 뒤 차에서 내렸다. 왼쪽 앞바퀴가 흙과 나무가지들 사이에 숨어있던 도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렇게 산 속에 대체 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도랑이 있는 것인가. 게다가 흙과 나뭇가지와 낙엽들이 이 도랑을 철저히 가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억울함을 한층 깊게 만들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 개미지옥처럼, 도랑은 지형지물로 스스로를 숨긴 채 가련한 팰리세이드의 앞다리를 홱 잡아챈 셈이다.
일단 다시 차에 올라 조심스레 엑셀을 밟아 봤다. 전륜구동인 팰리세이드는 앞으로 힘을 내서 나가는 듯 하더니, 더는 힘을 받지 못했다. 차에 기스가 난건 상관 없었지만 왼쪽 앞바퀴는 헛돌았고 오른쪽 앞바퀴도 힘을 내지 못했다.
왜 나는 사륜구동을 사지 않았나 하는 자책까지 다가왔다. 내렸다가 탔다를 반복하며 이래저래 차를 움직이려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혼자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음을 인정한 나는 보험사로 전화를 걸었다. 친절하게 전화를 받은 보험사 직원에게 상태를 설명하는데까지는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위치였다. 길이 없는 위치다 보니 지역을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또, 그런 곳이다보니 견인차가 올라올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 난감하다는 답을 했다. 그러면서도 직원은 어찌저찌 견인차를 보내주기로 답을 주며 전화를 끊었다. 조금 오래 걸릴거라는 말을 남기며.
차 옆에 기대어 쭈그려 앉아 있을때 언덕 위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렀다. 중년의 등산객 세 명이 깔깔대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차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어이고, 여기도 차가 올라오는구만?"
"그러게. 탐험정신이 탁월한 양반인가봐."
그들은 차를 쭉 둘러보다가 쭈그리고 앉아 있어서 보이지 않던 나를 발견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일어났다.
"아이고, 놀래라. 청년 차요?"
"아.. 예."
"어디 가시길래 차를 여기까지 몰고 오셨수?"
"아.. 저 위쪽에 가보려고 했습니다만.."
"저 위에? 아무것도 없는데?"
그들은 서로 끄덕이며 의아해했다. 설명을 길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시 다른 아저씨가 말했다.
"근데 왜 여기 멈춰 있으신가?"
"아.. 저쪽에 바퀴가 빠졌는데.. 못 빠져나와서요.."
그제서야 세 명은 빠진 바퀴쪽을 바라봤다.
"지랄맞게 빠져버렸고만."
"우리가 한 번 밀어봐드려?"
아저씨들은 이구동성으로 얘기했다.
"아, 아닙니다. 이래저래 해봤는데, 안 빠져 나와지더라고요."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리고 차를 밀어보기 시작했다. 차가 움찔거렸다.
"이거 잘 하면 되겠는데? 이봐, 청년. 엑셀 한번 밟아봐."
나는 나도 모르게 후다닥 운전석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페달에 맞춰서 세 명의 아저씨들이 차를 밀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랑에 빠진 쪽 바퀴가 공중에서 헛돌았다. 차의 바닥 중 어느 부분이 도랑 어딘가에 걸쇠처럼 닿아있었다.
"아니, 형님. 이거 차 바닥이 여기 쎄멘에 아예 닿아버려서 못 빠져나가. 이쪽 바퀴도 헛돌잖아. 이거 아예 끌어내거나 바퀴 앞에 뭘 대야돼."
"우리 여기 아래 쪽에 판떼기들 좀 모아둔거 있지 않나?"
"맞네. 그걸 좀 가져봐볼까?"
"그럽시다."
그들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산 아래로 내려갔는데, 시야에서 사라지진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그들 나름의 장소가 있는 모양이었다. 세 명은 손에 큼지막한 나무판과 각목들을 들고 다시 가까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작당 모의하듯 머리를 맞대며 의논했다. 나를 배제한 채.
"아냐, 이건 너무 커서 바퀴 앞에 끼워넣질 못 해. 지금 이거 반으로 쪼개서 넣으면 딱 크기는 맞을거 같은데?"
"형님, 그리고 저쪽 바퀴에도 대야 돼요. 지금 힘을 못받어. 한번에 훅 나가면 아예 여기 차 밑바닥 다 작살난다."
"해봅시다. 그거 일단 쪼개보자고."
"이걸 뭔 수로 쪼갠데?"
한명이 차 앞쪽 도랑 위에 각목을 가로질러 올려놓더니 등산화 발로 힘차게 각목을 밟았다. 각목은 한번에 쪼개지지 않았다. 다시 몇차례 더 밟으니 쪼개지는 소리가 나다가 반토막이 났다. 보고 있던 두 아저씨가 환호했다. 대장처럼 보이는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아, 청년. 여기 빠진 바퀴 앞쪽으로 요 막대기들을 댈거야. 저렇게."
"예, 예."
나는 왠지 모르게 다시 후다닥 운전석으로 향했다. 아저씨들은 발로 툭툭 차서 각목이 바퀴 안쪽까지 잘 닿도록 정렬한 후 외쳤다.
"우리가 밀테니깐 다시 밟아!"
나는 "예!"대답한 후 엑셀을 밟았다. 뒤에서 세명이 미는게 룸미러로 보였다. 차가 살짝 들리는 느낌이 들더니 각목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나면서 위로 훌쩍 올라왔다. 빠져나온 것이다. 환호소리가 들렸다.
"됐다!"
아저씨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기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와서 인사했다.
"어우..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그들은 감사를 받기는 커녕 자기네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하고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자 등을 두드려주며, "아이고, 고생했어."하며 오히려 칭찬을 해 주었다.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라고 말하는 나를 뒤로 두고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산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조심해서 올라가소! 또 빠지지 말고!"
한 아저씨가 소리쳤다. 다른 두 아저씨들도 손을 흔들고는 다시 가던 길을 따라 멀어졌다. 그들이 처음 여기로 다가오던 때의 깔깔거림보다 더 커진 깔깔거림도 함께 멀어졌다.
세 명의 아저씨들이 온 얼마 안되는 시간동안 이 모든 일이 지나갔다.
발로 타이어를 밟아본 후 운전석에 올라타서 조금 더 조심스레 앞을 보며 엑셀을 밟았다. 보험사로 전화를 다시 걸어서 견인차는 안 와도 된다고 전했다. 괜히 웃음이 나오는걸 멈출 수 없었다. 천진난만하게 멀어지는 세 중년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같이 게임 퀘스트라도 깬 듯 신나하던 모습은, 캠프를 차리고 망원경을 설치할 때까지도 생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