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산골에 사는 여자 1

소설 연재

by 서인석

야채가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는 싱싱하고 맛있었다. 건강한 맛인데도 혀까지 만족스러운. 간의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셋업하면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한끼 적당히 떼우겠다는 생각으로 사온 샌드위치였던지라 대충 물과 함께 먹었는데, 샌드위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잠시 테이블에 샌드위치를 올려놓고 차에서 커피를 내릴 도구들을 꺼냈다. 포트에 생수를 채우고, 끓을 때까지 잠깐 멍하니 앉아있기로 했다. 하늘은 맑았지만 구름이 조금 보였다. 완벽히 깊은 하늘을 찍긴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 스스로를 자각하며 피식 웃었다.


불과 한두달 전, 회사를 다닐 때는 하늘조차 잘 보지 않았는데. 보더라도 그저 막연하게 '구름이 예쁘구나' 하고 넘겼을텐데, 이젠 하늘을 보며 제법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자박자박 소리가 들리더니 등산모자를 쓴 어떤 여자가 나무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여기서 뭐해요?"

나는 잠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당황했다. 캠핑으로 포장된 노숙생활이 길어지면서 일종의 노이로제 같은 게 생겼다. 차를 빼라면 빼야하고, 비키라면 비켜야하고,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게, 방랑자의 삶이라는 걸 굳이 몸소 몇주간 체험하고 있던 터다. 자연스럽게 저자세로 답했다.


"아.. 여기 있으면.. 안되나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신기해서요. 이런 외진.. 말도 안되는 곳에서 캠핑하는 사람이 있나 해서요."

"아.. 있으면 안되는건 아니죠?"

나는 여전히 과할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깔깔대며 답했다.


"이봐요, 내가 여기 땅 주인도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에요, 궁금해서."

나는 안심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휴.. 네. 뭐 캠핑 그런거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나는 왠지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서 허리에 손을 댔다가, 주머니에 넣었다가, 어깨를 잡았다가, 머리를 긁었다가 했다. 마을에서 뭔가 사거나 식당을 가거나 할때 말고는, 누군가와 직접 대화하는게 오랜만이었다. 특히 캠핑 스팟에서는 사람 만날 일이 더더욱 없다. 함정에 빠진 차를 구해준 아저씨들과 만났던 것도 벌써 이삼주는 족히 지났다.


그녀의 시선이 망원경에서 멈췄다. 컴퓨터와 카메라까지 연결된 장비들을 보면서 그녀는 눈이 더 크게 똥그래졌다.

"오와.. 무슨 대포 같네요? 캠핑하면서 별도 보나봐요? 아니면, 과학자이신가? 캠핑하면서 별보시는게 취미인가봐요?"

그냥 빨리 지나가게 하려면 대강 대답하면 된다. 사실대로 얘기하려면 얼마나 길어질까. 예의상 물어본 것일수도 있는데. 테이블 위 샌드위치는 말라가고 있는데.

하지만 결국.

"..사실은 그 반대..에요."

"네?"

"별을 보려고 캠핑을 하는 거에요."


나는 이 말을 하면서야 처음으로 그녀와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 있었다.

등산모자 뒤로 묶은 머리가 단정히 어깨정도까지 내려와 있었다. 가방은 없이 빈 어깨였고, 한 손만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목장갑을 낀 손에는 뭘 움켜쥐고 있었다. 트레이닝복 바지에 헐렁한 등산복 반팔 티 차림이었고, 옷의 목 부분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신발은 등산화가 아닌 낡은 운동화였다. 전반적으로 가벼운 옷차림이었고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아 보였다. 얼굴과 눈과 입은 작았고 똥그란 모양이었다. 말할 때마다 오물오물 입술이 움직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갈 길 가겠지 했는데, 커피포트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도 한잔 줄래요?"

나는 처음에 뭘 말하는지 몰라서 "네?"하며 두리번 거렸다가 이내 커피를 가리킨다는걸 알아챘다. 컵은 하나밖에 없어서 차의 생수통 옆에 정리해둔 종이컵을 꺼내어 거기에 커피를 조금 주며 말했다.

"저, 그런데 설탕이 없어서.."

그녀는 깔깔대며 답했다.

"이봐요. 내 행색이 이렇다고, 커피 안먹어봤을줄 알아요? 내가 읍내 이디야 단골이에요. 아메리카노만 먹어요. 나도."

"아.. 네.. 죄송.."

"뭘 또 죄송까지야."


그녀는 홀짝 커피를 마시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혹시 칼같은거 있어요?"

그녀가 꺼내는 말마다 '뭐지?'싶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두리번거리다가 간이 테이블 근처에 두었던 맥가이버칼을 건넸다. 그녀는 남은 커피를 입에 훅 털어넣더니 빈 종이컵을 테이블에 툭 놓았다. 그리고 받은 칼을 목장갑 낀 손등에 슥슥 닦더니, 움켜쥐고 있던 무언가를 테이블에 놓고 그것들 중 한개를 집어 들었다. 밤이었다. 그녀는 작은 칼로 밤을 능숙하게 깎더니, 하얀 밤의 살결이 나오자 내게 건냈다.


"자요."

내가 어리둥절하며 두 손으로 받았다.

"커피 값이에요. 여기 계속 있어요?"

나는 고맙다는 고개 끄덕임을 보이며 답했다.

"일단, 오늘 여기 자리를 잡았는데.. 좀 찍어보고 괜찮은 스팟이다 싶으면 오래 있을수도 있고요. 아니다 싶으면 옮길 거에요."

한 입에 밤을 넣었다. 밤은 탱글탱글하고 고소했다. 샌드위치와는 다른 싱싱함이 입 안에 퍼졌다. 그녀는 다른 알밤 하나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남은 하나를 다시 칼로 깎더니 이번에는 자기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칼을 돌려줬다.


"이거로 지금 하늘 보면 뭐 보여요?"

그녀는 망원경을 가리켰다. 나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 안되요, 위험해요. 태양보면 큰일나요!"

"그럼 저녁에 다시 오면 나도 저걸로 별 볼 수 있어요?"

"아.. 뭐.. 네. 잘 잡힐진 모르겠지만.."

"몇 시쯤 오면 되요?"

"일단.. 장비는 해 다 지고나면 켜기 시작할거에요."

"오케이, 이따 놀러올게요. 괜찮죠?"

그녀는 이미 답을 다 정해놓고 괜찮냐고 물어봤다.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수긍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손을 허벅지에 탁탁 털더니 손을 흔들며 총총총 산 밑으로 내려갔다. 포트에 남은 커피를 내 컵에 모두 따라냈다. 식어있었지만 제법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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