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해가 졌지만 완전히 깜깜해지지는 않았을 즈음,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그녀가 큰 랜턴을 켜고 올라왔다. 그녀는 경사가 꽤 있는 길을 올라오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올라오는 실루엣이 날렵했다. 작고 동그란 사람이 휙휙 빠르게 다가오는게 날다람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다람쥐의 한 손에는 작은 소쿠리가, 다른 한 손에는 랜턴이. 시야에서 마주치자 그녀는 웃으며 소쿠리를 들어보였다. 나는 고개숙여 인사했다.
"뭐에요?"
"방울토마토. 마당에서 키우거든요."
아까와는 다르게 긴 청바지와 흰 티를 입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목에 수건인지 목도리인지 모르겠는 무언가가 걸려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깐 회색 가디건의 팔 부분을 목에 묶고 올라온 거였다. 모자는 쓰지 않았고, 대신 뒤로 묶여있던 머리를 위로 올려 묶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간의 의자를 내주었다.
"나 때문에 앉을데 없는거 아녜요?"
"아녜요, 이래 봬도 없는게 없어요."
나는 더 작은 접이식 의자를 들어보였다. 그녀는 테이블에 소쿠리를 두고는 수 년간 거기 앉아서 지냈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내가 내어준 의자에 앉았다. 나는 그 맞은편에 작은 의자를 두고 앉았다. 커피 포트의 버튼을 눌렀다.
"밤 되면 금방 추워져서, 코코아 좀 끓여드릴게요. 생각보다 별이 잘 안 잡히면 오래 걸릴수도 있어요."
"밤 추운 건 내가 더 잘 알죠."
그녀는 웃으며 목에 둘러져 있는 가디건을 툭툭 쳤다. 나도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일단 이 망원경은 미국 M사의 OO모델이에요. 나름 큰 맘 먹고 사긴 했는데, 진짜 별 보는 사람들이 쓰는거에 비하면 아주 고급 모델은 아니에요. 여기 연결된 카메라는 고화질로 녹화할때 쓰는거고요, 이 카메라는 급하게 다른 각도나 모양을 찍고 싶을 때 쓰는데.. 아직 잘 못써봤고요. 여기 연결된 노트북으로 녹화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저장해요. 영상 용량이 생각보다 커서 이렇게 외장하드도 있어요. 여기 이 작은 망원경은 비상용이기도 하고, 눈으로 급하게 보고 싶을 때 쓰곤 해요."
나는 그 외에도 자잘한 것들을 몇가지 더 설명했다. 가령 삼각대를 고정한 나사라던지,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던지 등등. 그녀는 작게 박수를 치더니 말했다.
"네, 브리핑 잘 들었어요.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갸우뚱한 나를 보는 똥그란 눈에 장난끼 가득한 표정이 담겨 있었다. 턱에 손을 괴더니 말했다.
"그쪽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선뜻 와도 된다고 하고, 선뜻 앉으라고 하고, 또 선뜻 설명을 다 해주네요?"
순간 머리를 띵 맞은 것 같았다. 왜 그랬지? 사람들과 동떨어져 지내다가 누군가 궁금해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들떠서 좔좔좔 설명한 꼴이 됐네.
"뭐, 좋아요. 더 좋아보여요. 진짜 별 보는걸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 같아서. 덕분에 이따가 별을 예쁘게 보게 되면 더 고마울거 같아졌어요.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그녀는 방울토마토를 하나 물더니 다짜고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저는요, 여기 중턱에 있는 마당있는 집에 살아요. 아마 차로 여기 올라올때 집 하나 보였을텐데, 거기에요. 어릴 때부터 거기 살았어요. 읍내에서 학교 나오고, 춘천에서 대학교 졸업했어요. 마케팅 쪽을 배워서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해요. SNS나 블로그나 이런 거로 광고해주는.. 뭐 그런 일인데, 아주 바쁘진 않아서 아까처럼 운동삼아 여기 자주 오르락 내리락 하고 그러죠. 밤도 따오고 감도 따오고. 언니는 서울살고요, 지금은 엄마랑 둘이 살아요."
그녀는 권은경이라고 했고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나도 내 얘기를 했지만 길게 할게 없었다. 천문학과를 졸업했다. 남들 하는 것처럼 취업을 준비했고, 괜찮은 회사에 들어갔다, 병원 생활을 조금 하고 나서 하고싶은걸 조금이라도 빨리 해야되겠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왔고 그게 몇주 됐다. 그 정도.
짧게 말했지만 이 생활로 전환되기까지의 내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른 그만 두는 일, 열심히 모았던 돈들을 이 생활을 위해 분배하는 일, 차를 사고 망원경을 사고 바깥 생활을 위한 각종 캠핑도구를 사면서 가파르게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는 일 등등.
하지만 그 얘기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표면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깊이까지의 이야기만 하면 충분하겠지.
차의 간식 상자에는 마른 간식들이 좀 있었다. 견과류나 가벼운 비스킷들을 접시에 깨끗하게 담아서 테이블에 두자 은경은 이내 잘 집어먹었다.
"혹시 맥주같은건 없어요? 내가 가져올걸 그랬나? 이런거 먹으니깐 좀 생각나는데요?"
"술을 안 마셔서요, 아무래도 차로 움직이다보니.."
"아, 그렇겠네요."
은경은 괜찮다는 듯 코코아 컵을 얼굴 높이로 들고는 건배하는 시늉을 했다. 맞장구 치며 한모금 따뜻하게 목으로 넘겼다.
조용히도 있었다가, 잡담도 했다가 하다보니 열한 시를 넘겼다. 하늘은 이제 완연히 깊어졌다.
"이제 찍으면 될거 같아요, 여기 보세요."
녹화를 시작했다. 노트북 모니터로 망원경에 잡히는 하늘이 필터링되고 확대되어 나타났다. 은경은 탄성을 질렀다.
"눈으로 보는 거랑은 또 다르네요!"
하지만 나는 살짝 아쉬웠다. 낮에 예상했던 것처럼 구름이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은경은 개의치 않는것 같았다. 그 어둠 속에서도 눈이 커지는게 보였다. 나는 뒷좌석에 꽂아둔 별자리 책을 가져와서 펼쳐들고, 휴대폰에 따로 저장해 놓은 딥스카이 사진과 함께 보여주며 설명했다.
"음.. A별자리가 좀 더 선명하게 보이네요, 사실 저는 a별을 기준으로 하늘이 돌아가는 모습을 주로 보는데, 구름이 많아서 a별이 가려지네요.. 아쉬워요.. 구름이 아예 없으면 a별 주변의 성단들이 가끔 아주 잘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보정을 많이 안해도 이렇게 딥스카이가 나오기도 해요, 물론 쉽지는 않지만요."
은경은 모니터와 하늘을 번갈아가며 보면서 연신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 주황색 별은.. 뭐에요? 유독 빛나네요?"
"아.. 감동을 깨고 싶진 않지만.. 저건 보통 비행기이거나 위성이에요. 멀리 보이는걸 보니깐 위성 같네요. 비행기는 빨간색이 깜빡이는게 함께 보이기도 하고, 훨씬 가까이 보이거든요. 비행기는 구름 근처에 있지만, 인공위성은 구름보다는 훨씬 위에 있으니깐 오히려 구름이 많은 날일수록 별이랑은 구분이 안갈 때도 있어요. 하지만 속도랑 거리가 다르니깐 전체의 영상을 보면 확실히 다르죠."
은경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것저것 물었다. 웬만한건 대답할 수 있었고, 말로 설명이 부족한 것들은 트렁크의 책을 꺼내 사진과 함께 보여주었다. 아주 캄캄했지만 어둠에 적응해서 그런지 서로가 선명히 보였다. 천체가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이 노트북에는 계속 담겨지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마치 중계보듯 바라봤다. 또, 혼자서 별을 볼때처럼 일어나서 망원경의 접안부로 별을 보기도 했고, 쌍안경을 들고 보고 싶은 별 쪽으로 관측하기도 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지만 예상외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틈이 없었다. 뜨거운 물과 차는 금방금방 식어서, 컵이 비워질 때마다 다시 끓여야 했다. 비스킷과 견과류는 시나브로 접시에서 줄어들었다. 하지만 배가 고파서 먹었다기 보다는 놓여 있어서 먹는, 그런 기분이었다.
세 시가 넘어가자 은경은 이내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는 차에 있는 담요 중 가장 깨끗한 걸 꺼내어 살짝 덮어줬다. 나는 늦어도 이 시간 정도면 망원경의 상태가 안정적이라는걸 확인한 후 차 안으로 들어가서 자곤 한다. 하지만 은경이 잠에 들었기 때문에 나만 홱 차 안으로 가버릴 수 없었다.
사실 이미 은경이 졸기 한두시간 전부터, "이제 그만 돌아가는게 어떻겠냐."거나, "차에서 눈을 좀 붙이는게 어떻겠냐"고 권하려 했다. 하지만 이 말들은 목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맴돌았다. 집으로 가라고 하는건 마치 보내버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차에서 자라고 하는건 "라면 먹고 갈래?"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차는 내 집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이런걸 물어볼 새도 없을 정도로, 은경이 하늘을 보는데 정신팔려 있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나는 따뜻하게 코코아를 다시 내린 후 한 모금 입으로 넘겼다. 그리고 모니터를 다시 응시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별들은 심술부리듯 제대로 형상을 드러내지 않는 날이다.
뭐, 그래도 괜찮았다. 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다짐했던, '내일도 있으니깐'이라고 생각하기.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오히려 구름을 관찰해서 좋은건가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과 함께 태블릿으로 딥스카이 촬영 사진들을 찾아보며 은경의 목이 혹시 꺾이지는 않을까 틈틈이 주시했다.
서서히 깼다. 나도 간이의자에 앉은채로 졸고 있었다. 은경은 여전히 의자에서 자고 있었다. 코에서 그르렁 소리가 작게 났다. 해가 슬며시 올라오고 있었다. 하늘은 더 찍어도 되지만 어차피 오늘의 촬영은 일찍 접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녹화를 껐다. 노트북과 카메라의 연결을 조심스레 해제할 때 은경도 깼다. 은경은 나에게 웃어보이며 입을 가리지 않고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굿모닝."
"불편하지 않았어요?"
"조금 뻐근하네요."
"아.. 미안해요, 그래도 가진 의자 중에서는 그게 제일 편할거에요."
은경은 일어나더니 스트레칭을 가볍게 하며 물었다.
"영상은 잘 담겼나요?"
나는 마우스를 잡고 화면들을 빠르게 돌리며 은경에게 보여줬다.
"앞에 이렇게 안개처럼 보이는게 구름이에요. 이놈들이 없으면 선명한 별들을 볼 수 있는데.. 어제는 대실패네요."
"뭐.. 잘 모르고 처음보는 입장에서는.. 이것도 너무 멋진걸요."
은경은 8배속으로 돌아가는 밤하늘의 영상을 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좀 더 괜찮은 하늘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아쉬운 결과물에도 빠져드는 은경의 모습을 보며 뿌듯하기도 했다.
영상이 서서히 밝아지다가 이내 마지막에서 멈추자 은경은 박수를 치며 다시 기지개를 켰다. 나는 민망해하며 턱을 긁었다. 올라온 수염이 손에 까칠하게 닿았다.
"난 이제 가야겠어요. 정말 진기한 경험이었어요, 덕분에."
"아.. 네. 불편하셨을텐데.."
"산이 다 그렇죠 뭐. 그래도 여기 살면서 별은 정말 잘 보인다 했었는데, 이렇게 보니깐 정말 많이 다르네요. 고마워요! 여기에 언제까지 있어요?"
사실 별 찍히는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오래 있을 곳은 못되는거 같았다. 그래도 며칠 더 있어볼까 싶은 생각이 지난 밤동안 들었다.
"그래도.. 한 2~3일은 더 있지 싶네요."
"아우! 오며가며 와도 되죠? 오늘처럼 밤 내내는 아니더라도."
은경은 하품을 크게 하며 말했다.
은경을 큰 산길이 있는 5분 정도거리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올라왔다. 은경이 내려가고 나서야 잠이 마구 몰려왔다. 장비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차에서 잘 수 있는 세팅을 끝냈다. 햇빛이 어느새 강해져서 선루프를 닫았다. 창문만 아주 살짝 연 후, 머리를 뉘였다. 이상하게 말랑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 기분으로 나는 기절하듯 아침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