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바람

소설 연재

by 서인석

이 캠프에서 첫날밤은 비교적 수월하다 싶었다. 구름이 조금 있어서 관측에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런적이 누적되다보니 '이 정도 구름양이야, 한두번도 아니고..'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둘째날이 되자 바람이 강해졌다. 그동안 관측이 어려웠던 날은 많았지만, 이 정도의 바람은 처음이다. 폭우와는 다르다. 지금은 순수하게 바람만의 힘이 발휘되고 있다.


다른 캠프에서 그랬던 것처럼, 산 중턱의 적당한 자리에 차가 자리를 잡고 돗자리와 천막을 설치한다. 간이 테이블을 돗자리 위에 두고 망원경과 카메라를 설치한다. 폭우가 올 때는 천막을 크게 쳐서 비를 좀 더 넓게 가리거나 관측을 포기하면 됐다. 그런데 바람이 부니깐 일단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보다 산은 흙바닥이다. 바람이 강하게 부니 모래가 많이 날렸고 테이블과 망원경, 카메라가 들썩였다. 천막은 위태롭게 줄을 붙잡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구름의 속도가 빨랐다. 바람이 구름을 몰아내 준다면 오히려 관측은 용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상태라면.. 캠프를 유지하기도 힘들거 같다.


일단 테이블과 천막, 망원경과 카메라, 노트북 등 모든 장비들을 차 안으로 철수시키기로 했다. 평상시의 캠프 철수때와는 힘겨움이 달랐다. 바람이 끊임없이 몸을 때려서 정신이 없었고, 모래가 계속 날리는 통에 먼지를 털어가며 넣어야 했다. 민감한 기계와 장비들이 많다보니 마음은 급한데, 자연환경은 끊임없이 텃세를 놓는다.


어디 있었는지 모를 나뭇가지와 낙엽들도 회오리를 그리며 날아들었다. 몸을 때리다가 설치된 테이블을 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빠르게 몸을 움직여야 했다. 결국 테이블이 쓰려졌다. 노트북과 태블릿, 지도가 포개져 있었는데, 이들을 정리해서 차 뒤로 넣으러 간 사이 쓰러진 것이다.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던 물건들이 사실은 테이블이 날아가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으아!"


한쪽으로 테이블이 기울자, 바람은 테이블 바닥면을 향해 세차가 힘을 가했다. 바람을 넓은 면에 맞은 테이블은 그대로 긁히며 더 멀리 던져졌다. 후다닥 뛰어가서 테이블을 빠르게 발로 밟아 멈췄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천막의 다리 하나가 펄럭임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서 밀려났다. 이제 천막은 마치 깃발처럼 펄럭이기 시작했는데, 이놈이 시야를 가리고 차를 때리는 통에 이미 없던 정신은 더더욱 없어졌다.


먼지투성이가 된 테이블을 닦거나 털고 넣을 틈이 없었다. 일단 트렁크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천막을 빠르게 풀었다. 마찬가지로 접을 틈이 없었다. 이놈도 일단 되는대로 트렁크로 넣었다. 시야를 가리며 펄럭이던 회색 천막이 사라지자 캠프의 풍경이 눈에 넓게 들어왔다.


커피잔이 쓰러져 있었고, 삼각대도 이미 넘어져 있다. 커피 컵은 커피가 담긴 채 쓰러져서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버렸다. 조수석에서 물티슈를 꺼내 대충 닦았다. 운전석으로 들어간 후 한숨을 쉬며 문을 닫았다. 몸을 뒤로 돌려 트렁크와 뒷좌석을 보니 가관이다. 한번도 깨끗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차가, 마치 전쟁을 수행 중인 군용차량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내려서 트렁크를 열고 정리할 순 없었다. 지금 차창 밖으로 회오리를 그리며 날리는 먼지들이 그대로 차 안으로 방해없이 들어올 듯 싶었다.


운전석에 앉아서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조용히 밖을 바라봤다. 캠프를 철수한 셈이니 이 곳은 떠나는게 맞다. 그럼에도 미련을 붙잡고 잠시 머무른 이유는, 첫째로는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스팟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두번째로는 이 정도로 괜찮은 스팟에서 좋은 사진을 제대로 건지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뭐라고 해야하나, 이대로 돌아가는건 마치 쉬운 상대를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패배한 스포츠 경기같았다.


휴대폰으로 날씨 뉴스와 기상상황을 검색하며 바깥 상황을 주시했다. 뉴스들은 하나같이 강풍을 알려주고 있었고, 내일까지도 강풍은 지속될 거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에휴."

시동을 켜고 페달을 밟았다. 읍내로 내려가서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따뜻한 온탕 안을 떠올리며 움직였지만, 마음은 따뜻하지 못했다. 쉬운 상대에게 패배한 마음이 편할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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